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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요니 Dec 20. 2020

시체는 사라졌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죽음에 대하여


 나의 첫 시체는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 옆에 앉은 낯선 아저씨가 할머니가 숨을 거뒀다고 말하자  가족이 머리를 땅에 박고 통곡했다. 어른도   있다는  처음 알게  날이었다. 처음 겪는 죽음은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할머니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나만 혼자 울지 않았다. 다만 할머니가 돌아가실  베고 계셨던 보라색 텔레토비 베개는 다시 만지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베개는 할머니 집에 있는 유일한 어린이용 베개였다. 할머니 집에서 자는 날이면 나와  사촌들은  베개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그러면 언제나 베개는 어른들에 의해  격렬히 우는 아이에게 돌아갔는데, 사촌들 중에 내가 제일  울었기 때문에 그건 항상  차지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죽었다는  베개를 갖지 못하는 것만큼 슬프지가 않아서 도무지   없었다. 반면 사촌 동생은 많이 울었다. 장례식에서 어른들처럼   아는 사촌동생이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많이 우냐고 물었다. 사촌동생은 자기 엄마가 우는  슬퍼서 따라 운다고 했다. 아무리  울어도 죽음을 이해  없었던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관에 들어가기 , 엄마는 이제 영원히 할머니를   없다며,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인사하라고 했다. 나는 그저 할머니 시체가 어서 빨리  앞에 사라져버리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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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슬퍼서 울  아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살아있는 자들만의 세상을 사는 산 사람이 죽음을 이해한다는 건 굉장한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경험주의자로써, 오직 산사람의 관점으로 죽음을 바라볼 뿐, 사후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그저 죽음이 싫을 뿐이다. 살아있는 자들의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는 게 슬퍼서 싫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죽은 사람의 몸이 더럽고 징그러워서 싫다. 어릴 적, 매년 봄이 되면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샛노란 병아리를 샀다. 병아리는 언제나 첫날은 싱싱했고, 둘째 날은 꾸벅꾸벅 졸다, 셋째 날 아침이면 죽어있었다. 3일 내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어루만지던 작고 귀여운 생명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면 그저 징그러워졌다. 덩그러니 남겨진 병아리의 육신을 볼 때면, 영혼이 떠나갈 때 육신도 같이 데려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혼이 떠나 것보다 영혼없이 남겨진 시체가 더 싫었기 때문이다.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병아리처럼 예뻐해주시던 우리 할머니가 시체가 된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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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는 정반대로 죽음을 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한참 남미 여행 정보들을 블로그에 포스팅하던 시절이었다. 고양이 아빠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내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너무 멋지네요', '저도 언젠간 꼭 가보고 싶어요' 따위의 기계적인 댓글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여행 준비를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그의 블로그에도 들어가 봤다. 그런데, 고양이 아빠라는 귀여운 이름과는 달리, 섬뜩했 그 블로그는 고양이 시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시체 중에 제일 싫은 시체가 고양이 시체다) 종이로 화면을 가려 사진을 피해 보려 애쓰며, 그의 글들을 읽어 나갔다. 그의 포스팅은 고양이가 죽은 날부터 시작되었는데, 고양이 시체가 변해가는 과정과 고양이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 서술되어 있었다. 눈 뜨고 죽은 고양이의 눈을 감겨줬다는 이야기, 털이 푸석푸석해지더니 빠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똥구멍에 구더기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샤워를 씻겼다는 이야기, 너(고양이)를 안고 다니는 걸 발견한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난처했단 이야기, 시체가 점점 썩어 뭉들어지자, 스티로폼 박스에 고이 너를 넣어 땅에 묻어줬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도무지 너를 보낼 수가 없어서 결국 새벽에 다시 땅을 파서 너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남미 여행을 계획한 것도, 육신마저 사라져가는 너를 차마 보낼 수가 없어서, 너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 내가 내 할머니의 시체를 사랑해주지 못한 것과는 달리, 고양이 아빠는 시체가 되어버린 고양이가 더럽지 않을만큼 고양이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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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브가트에서 처음으로 시체를 화장하는 것을 목격한 날, 고양이 아빠가 남미가 아니라 네팔로 왔었으면 좋았을걸, 생각했다. 뜨거운 햇빛의 열기를 그대로 받는 강변 모래밭에서는 매일 수십구의 시체들이 태워졌다. 힌두교 사람들은 시체가 죽은 지 24시간 안에 바로 화장을 한다. 한국에서는 시체와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이 3일이나 되지만, 네팔의 시체들은 하루도 안돼서 사라졌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들은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마치 산사람이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사람들은 나무장작을 쌓아 올려놓고 시체를 감고 있던 천들을 하나둘씩 벗겨냈다. 실 올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시체가 장작 더미 사이로 묻다. 기름에 젖은 장작에 불이 붙  화염 속에 보이는 시체의 실루엣은 곧 해골이 되더니, 순식간에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육신으로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내가 죽으면 남겨질 내 시체가 내가 다른 시체들을 그리 여겼던 것처럼 더러울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네팔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힌두 사람들이 화장터와 가까운 강에서 죽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인지 데브가트에는 늙은 사람들이 많다.) 그곳에서는 시체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울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날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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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섹스 같은 거라고 했다. 해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가 없어서 환상이 가득하지만, 누구나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거라했다. 그들은 산사람의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산사람들은 그들을 자연스럽게 떠나보냈다. 시체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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