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 브라질 여행 ep.5
브라질 수도를 묻는다면 대부분 남미 최대 도시 '상파울루'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리우 데 자네이루'를 떠올릴 것이다.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한국에서 수도는 '중앙 정부가 있는 도시'라는 사전적 정의보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더 크게 와닿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질의 수도는 '브라질리아'다. 브라질리아는 이름에서부터 수도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지만, 인구수는 상파울루, 리우, 살바도르에 밀려 4위를 차지한다.
브라질은 세계 5번째로 큰 나라로, 다른 남미 국가들을 합친 면적보다, 유럽 전체 대륙보다도 넓은 영토를 자랑한다. 하지만 도시가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어 내륙지방은 대부분 황무지다. 이에 브라질은 오래전부터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내륙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1890년대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던 브라질의 천도 사업은 1956년 주셀리노 쿠비체크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쿠비체크 대통령은 허허벌판이었던 브라질 고원에 2천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해 5년 만에 초고속으로 '브라질리아'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1960년, 도시가 완공되자마자 브라질리아는 살바도르와 리우 데 자네이루에 이어 브라질 세 번째 수도가 되었다.
식민시대에 건설된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의 도시들과는 달리, '브라질리아'는 현대에 건설된 계획도시로 차별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특이한 점은 도시 전체가 좌우대칭을 이루는 비행기 모양이라는 것이다. 또한, 도시의 중심이 되는 광장이 도시의 끄트머리(비행기 머리 부분)에 위치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국회, 정부, 법원에 둘러싸여 삼권의 광장이라 불리는 이 광장은 브라질의 삼권분립을 상징한다. 브라질의 정부기관들은 중세 유럽식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남미 타국가들과 달리, 얼핏 보면 현대 미술관처럼 보일만큼 감각적이다. 이 외에도 브라질리아에는 대로(비행기 뼈대)를 사이에 두고 tv타워, 브라질리아 대성당 등 모던하고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건축물들이 줄지어 있다.
브라질리아는 당시 최고의 건축가였던 오스카 나마이어와 그의 스승 루치오 코스타에 의해 설계되었다. 브라질 전역에서 그의 건축물들을 접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브라질리아는 도시 전체가 그에 손에 탄생한 작품이다. 오스카의 예술 감각이 두드러지는 브라질리아는 현재까지도 많은 국가들의 도시 계획에 영감을 준다. 브라질리아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유네스코로 지정된 유일한 도시기도 하다.
원래 리우에서 살바도르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급하게 행선지를 브라질리아로 변경했다. 내륙에 홀로 고립된 브라질리아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별다른 랜드 마크도 없었지만, 막상 수도를 건너뛰긴 아쉬웠다. 그 바람에 리우에서 브라질리아로 26시간, 다시 브라질리아에서 살바도르로 30시간짜리 버스를 타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왔건만, 브라질리아는 그만한 시간과 경비를 투자하기엔 여러모로 아쉬웠다. 천도만을 위해 건설된 계획 도시인만큼 행정, 교육, 사법 도시로써 기능적인 역할에만 충실했을 뿐, 역사도, 지역축제도, 전통문화도 없었다. 매일 축제가 벌어지는 해변도시와는 달리 브라질리아는 지나가는 차도 드물 정도로 한산하기만 했다. 브라질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를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코로나로 인해 박물관과 미술관 마저 문을 닫아 여행거리는 더욱 줄었다. 게다가 지리적으로 동떨어져 물류비가 비싸고, 정부 관계자가 모여 사는 부촌이었기에 물가도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높았다. 장점이라곤 교육기관들이 몰려 있어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24시간 카페가 많다는 점뿐이었다. (치안이 안좋은 브라질에서 24시간 카페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브라질리아는 이름과는 달리 내게 가장 브라질스럽지 않은 도시로 남아있다.
브라질리아로 천도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브라질 도시들은 해안에만 밀집되어 있고 브라질리아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때문에 브라질리아 천도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하지만 브라질리아가 수도가 된 것엔 내륙 화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브라질리아 전에 수도였던 ‘리우’와 또 그 이전에 수도였던 ‘살바도르’는 모두 해안 항구도시다. 항구도시는 교역에 유리해 경제성장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가지지만, 이는 그만큼 외세 침략에 취약하는 뜻이기도 하다. 해안은 사실상 국경으로, 외세 침략을 가장 먼저, 많이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는 국경에서 먼 곳에 두는 것이 국가안보에 유리하다. 또한 영토가 큰 나라일수록 수도를 국토 중앙부에 위치하는 것이 넓은 국토를 두루 통치하기에도 보다 적합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브라질과 비슷한 지리적 조건(해안 국경+넓은 대륙)을 가지는 호주의 수도는 '시드니'가 아닌 ‘캔버라’이며, 터키의 수도 또한 ‘이스탄불’이 아닌 내륙도시 ‘앙카라’다.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종시 천도를 위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지만, 외신에서는 ‘인구분산’보다 ‘국가안보’에 더 의미를 두기도 한다. 국제 언론에서 '북한'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 같은 존재로 다뤄지는 만큼, 서울은 수도가 되기엔 북한과 너무 근접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국호가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수도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낸 서울이 다시 수도의 지리적 조건에 충족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소원하며, 수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안겨주었던 4박 5일의 짧은 브라질리아 여행기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