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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향기, 마음으로 보는 봄이 되길

by 서담

삶의 즐거움 중에서 먹는 즐거움 이상으로 보는 즐거움이 크다. 나 역시 안경을 착용하고 있지만 벗을 경우에는 한걸음 앞에 있는 그 무엇도 뚜렷하게 보기 힘들다. 볼 수 없다는 것은 좀처럼 수용하기도 인정하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걸어서 출근하는 길가에서 우연히 시각장애인을 만나게 되었다. 선뜻 말을 걸진 못했다. 안내견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만 한참을 지켜볼 뿐이었다. 지나는 사람이 많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멈추어 서기를 여러 번이었다.


지나다니던 길가에 있는 노란색으로 된 블록이 인도 중앙에 선처럼 연결된 것을 본 적이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시각장애인들의 통행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점자 유도 블록이다. 2022년 장애인통계연보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애 인구는 전체인구의 5.1%로 약 264만 명이다. 그중 시각장애인은 9.5%에 해당한다.


무언지 불합리한 문제가 생길 때는 오기가 발동하듯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고 가정하기 힘든 일이지만 집 앞에서부터 시각장애인들이 통행하기 위한 각종 갖춰진 시설들의 실태를 직접 하나하나 알아보았다.


출근길이기도 한 서초구 방배동(동덕여고)에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역 근처(뉴코아아웃렛)까지 약 7km 구간을 도보로 이동하며 각종 점자 유도 블록과 횡단보도의 음향신호기 설치, 에스컬레이터 주의사항 음성안내 여부 등을 중점으로 확인해 보았다.


확인 결과 실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다. 통행이 가능한 상태로 점자 유도 블록이 설치된 곳은 확인한 총 30여 개소 중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방향을 제대로 안내해주지 못하는 점자블록이나 미설치구역도 여러 곳이었다. 점자유도블록 위에 자전거, 킥보드, 자동차 등 장애물이 있는 곳 또한 5곳 이상이었다.


횡단보도상에 있는 음향신호기가 설치된 20여 곳 중 유일하게 1개소만 자동 음성안내가 나오고 있었고, 작동 자체가 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탑승 시 주의사항에 대해 음성안내를 해주는 곳은 아쉽게도 단 한 곳도 없었다. 비장애인들에게 통행을 하는 데 있어 갑작스럽게 사고가 유발되거나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도로에 있는 어떤 물건들도 위협이 되거나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 안전을 위해 세워놓은 안전봉마저도 큰 장애물로 다가온다. 장애인 인식에 대한 선입견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된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는 사회제도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 인식이 만들어낸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장애인 날이나 지역센터를 방문해 이벤트적인 형식적인 봉사 활동보다는 우리 주변에 있는 장애인들의 근본적인 제도개선이나 환경 마련이 급선무는 아닐까 생각한다.


소리와 향기, 마음으로 보는 봄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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