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비가 내린다. 그리고 그 비들은 각기 다른 얼굴로, 다른 목소리로 우리 곁에 찾아온다. 봄비는 세상을 깨우는 작은 속삭임 같다. 나뭇잎 위에 살며시 내려앉아, 마치 새싹들에게 일어나라며 속삭이듯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봄비가 내리는 날, 그 빗방울을 따라 걷다 보면 세상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다. 봄비는 그야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부드러운 손길이다.
여름비는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를 가르며 세차게 내리지만, 그 안에는 깊은 시원함이 숨어 있다. 무더위에 지친 나무와 풀들이 그 여름비를 맞으며 반짝이는 빛을 되찾는다. 빗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자연스레 고개를 든다. 여름비는 뜨거운 하루를 씻어내며, 삶의 잠깐의 쉼표를 선사하는 것이다.
가을비는 조금 다르다. 부끄러운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다가온다. 창가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마치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며,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가을비는 그저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리고, 고요하게 사색의 시간을 선물해 주는 비다. 그 빗속에서 나는 가을의 깊이를 느끼고, 세월이 건네는 위로를 받아들인다.
겨울비는 더 묵직하다. 차가운 공기 속에 내리는 겨울비는 그저 한 줄기 빗줄기가 아니다. 그것은 흩날리는 바람 속에서 우리를 깨우는 냉정한 진실처럼, 마주할 때마다 차분한 고요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창 밖에 흐르는 빗소리를 들으며, 겨울비는 마치 "잠시 멈추고, 이 계절의 이야기를 들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고요한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여전히 마음이 이끄는 대로 부침개와 막걸리를 찾게 된다. 뜨거운 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부침개의 소리와 막걸리 한 잔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비 오는 날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위로다. 비와 함께하는 그 순간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소박하지만 가슴 따뜻한 시간이다. 빗방울과 음식이 어우러져, 그 순간은 우리 일상 속 작은 기쁨의 완성이다.
비는 계절마다 다르게 내리지만, 그 속에는 늘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봄비가 주는 생명의 기운, 여름비가 주는 시원함, 가을비가 주는 사색, 그리고 겨울비가 주는 고요함. 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선물이자, 우리 삶의 한 조각이다. 우리는 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매번 잊고 있던 감정들과 다시 만난다.
비가 내릴 때마다, 그 빗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마음의 한 켠을 다시 찾을 수 있다. 그 소리와 느낌에 귀 기울이며, 삶 속에 숨어 있던 작은 기쁨들을 발견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비는 세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부드러운 손길이다. 그 손길을 느낄 때, 우리는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다시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