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옷을 벗고 씻으려던 순간, 아내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얼굴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잠깐만, 자기야. 그거 좀 봐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발을 내려다보았다. 양말 뒤꿈치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아내는 한숨을 쉬더니 대뜸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아니, 얼마나 정신없이 일을 했으면 이렇게 큰 구멍이 난 걸 모를 수가 있어? 내가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사실 나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번 산 물건은 오래도록 사용하는 습관 때문에 양말 한 켤레에 구멍이 나는 일이 종종 있곤 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단순한 양말의 구멍이 아니라, 그것을 알지 못할 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내 삶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별거 아니야. 양말 하나 찢어진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어? 그냥 바꿔 신으면 돼.”
그러나 아내는 나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야. 당신이 얼마나 애쓰는지 보여서 그래. 이렇게까지 몰랐던 내가 더 미안하고, 또 고마워서 그래.”
아내의 말에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늘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고, 나의 작은 불편함에도 미안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 스스로는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구멍 난 양말은 단순히 물건의 닳음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많은 걸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증표였다.
그 순간, 나는 아내가 내게 미안하다며 고마워했던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내는 단순히 양말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그 구멍 뒤에 있는 내 고단한 하루를 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느끼지 못했던 나 자신의 노력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고마워. 당신 덕분에 나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다시 알게 됐어. 구멍 난 양말이 이렇게 힘을 줄 줄은 몰랐네.”
그날 밤, 나는 오래된 양말 한 켤레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물건이 그렇듯, 사람도 시간을 지나며 닳고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그 흔적들은 단순한 소모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왔던 증거이자, 우리의 노력이 담긴 기록이다. 아내는 그것을 알아보고, 미안해하고, 나에게 감사를 표현할 만큼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때로 사소한 것들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구멍 난 양말 속에는 나의 하루가, 아내의 사랑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흔적이었다.
삶은 닳아가는 과정 속에서 빛난다. 작은 흔적도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그 흔적을 알아보고 서로를 격려하며 감사할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