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잊지 못할 고마움과 미안함의 시간

몸과 마음의 흔적

by 서담


지난 2주간, 아내는 평소보다 웃음이 줄어들었다. 대신 몸과 마음이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내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나는 아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불편함과 고단함을 읽을 수 있었다. 어깨와 등을 숄로 감싸며 추위를 유난히 더 느끼는 듯한 모습은 더욱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처음에는 그저 갱년기 증상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잊고 지냈던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며 가슴을 울렸다. 차가운 겨울 어느 날, 함박눈이 세상을 덮던 바로 그날이 떠올랐다. 아내가 딸아이를 낳으며 차가운 병원 침대 위에 있었던 그 순간 말이다. 오늘이 바로, 우리가 부모로서의 삶을 시작한 날이었다.


딸이 태어난 날, 나는 아빠가 된다는 벅찬 책임감과 신기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나 어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던 철없던 대학생 시절의 나는, 아내가 겪고 있던 고통과 힘겨움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딸을 낳고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차가운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를 보살피는 대신, 나는 그저 아빠가 되었다는 감정에 빠져있었다.


"요즘 왜 이렇게 추위를 많이 타?"

내 물음에 아내는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아마… 그날의 기억 때문인 것 같아. 딸 낳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그때 말이야. 이맘때가 되면 어깨도 아프고, 온몸이 무겁고, 괜히 춥고 그래."


그 순간 나는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30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녀의 몸은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산후 진통이라는 이름으로, 그 고통은 알람처럼 매년 이 시기가 되면 그녀를 찾아왔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도, 잊고 지냈던 것도 너무나 미안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때도 지금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해서."

나는 아내를 조용히 안아주며 말했다.

"그때 나도 참 어렸어. 그래도 그날 당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내가 얼마나 고마워해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아내는 내 품에서 조용히 웃었다. "괜찮아. 나도 사실 잊고 살다가 이렇게 찾아오는 진통이 알려줘. 우리가 딸을 낳고 부모가 된 날이었다고."


그날 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내는 이 모든 고통을 묵묵히 견뎌냈고, 나는 그 사실조차 몰랐다. 시간은 지나도 그녀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는 그날의 흔적이, 내가 부족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깊이 새겨졌다.


30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흐릿하게 만들지만, 아내의 몸이 기억하는 산후 진통은 그 시간을 뛰어넘었다. 그 진통은 단순히 고통이 아니라, 가족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아내가 그 고통 속에서도 딸아이를 품에 안고 웃었던 날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다.


삶의 소중한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몸과 마음에 흔적으로 남는다. 그 흔적은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한 증거이다. 그 흔적을 알아보고, 함께 아파하며 고마워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1화건강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