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공감
군대는 오랫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물론 요즘은 여성들도 군인의 길을 선택하고 있지만, 아직 대다수 한국 남성에게 군대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자 숙명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군대를 다녀온 자와 다녀오지 않은 자 사이에는 종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벽이 존재한다. 때로 그것은 세대를 뛰어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깊은 골을 만든다.
내게 아버지는 어렵기보다는 어색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어색함마저도 군대라는 단어 앞에서 더 깊은 벽으로 변했다. 아버지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고, 나는 장교로 군복을 입었다. 장교로서 오랜 시간 군에 몸담으며, 병사의 생활과 장교의 책임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군대를 알지 못했던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를 보내야 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전역했다. 그리고 내 아들은 내가 걸었던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나와 아들 사이에 흐르는 대화는 비록 어색하지만 그 깊이는 다르다. 우리가 같은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군 생활과 장교로서의 고민, 그리고 앞날의 꿈과 걱정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한다. 나와 아들 사이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깊은 공감대가 흐른다. 그래서인지 아들과 나누는 대화는 어색함을 넘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곤 한다.
얼마 전 아들이 1년간의 어학 과정을 마치고, 다시 5개월의 군사교육을 앞두고 잠시 집에 들렀다. 나는 아들이 어디쯤 서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려하는지를 너무 잘 알기에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저 건강을 잘 챙기라며 가볍지만 진심 어린 당부를 건넸다. 나와 아들은 더 이상 군대라는 단어 때문에 어색한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을 공유하기에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없었던 그 대화의 기회를 나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놓치지 않으려 한다. 군대라는 이름으로 묶인 어색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이해와 공감이라는 새로운 관계로 나를 인도하고 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가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군대는 단지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