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명예가 지워지는 순간, 마음도 떠난다

불공정에 대한 결단

by 서담


얼마 전 전역을 결심했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안타까움이 앞섰다. 사회에는 "모든 직장인은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말이 있다. 직장을 다니며 겪는 수많은 갈등과 고단함 속에서, 때로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


군대도 다르지 않다. 군복을 입고 명확한 계급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군인들도, 마음속에 전역지원서를 한 장쯤 품고 살아간다.


군에서 전역을 고민하는 이유는 단순히 힘든 일정이나 높은 피로도 때문만은 아니다. 훈련은 고되고, 작전은 반복되며, 인사는 예측할 수 없지만, 군인들은 그런 현실을 ‘당연한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버틴다. 그러나 진짜 견디기 어려운 건 자부심과 명예를 잃는 순간이다.


많은 전역 희망자들이 조용히 말한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지치게 해서 떠난다”라고.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상급자’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군 조직은 상명하복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명령은 곧 절대다. 그런데 그 명령이 공정하지 않고, 상급자의 리더십이 오만하거나 불공정하게 행사될 때, 충성은 강요가 아닌 상처가 된다. 전우애로 버티던 마음은 분노로 바뀌고, 자부심으로 견디던 삶은 냉소로 무너진다. 결국 남는 것은 "나는 왜 이 군복을 입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사실 전역을 고민하는 순간은 군인으로서 가장 깊은 자기 성찰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더 잘하고 싶고, 더 헌신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환경이 사라졌을 때, 사람은 떠날 수밖에 없다.


군인은 명예로 일한다. 그 명예를 무너뜨리는 것은 피로가 아니라 불공정이다. 상급자 한 명의 리더십은 부하 수십 명의 동기와 자존감을 살릴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진급과 평가를 넘어서, 한 사람의 말과 태도, 인격이 전역이라는 결단에 직결되는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전역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의 고민이 당신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 '강함'의 기로 위에 서 있다는 증거라고. 떠나든 남든, 그 선택은 당신의 책임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명예를 잃지 않는 선택이어야 한다.


한 줄 생각 : 군복을 벗는다는 것은 그저 떠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결단이기도 하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7화우리의 아들, 국가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