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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려야 맑아진다

삶도, 마음도

by 서담


창밖에 비가 내린다. 빗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두드린다. 젊은 날, 나는 유독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센티해지고, 왠지 고독한 분위기에 스스로를 담그며 세상에 잠시 등을 돌릴 수 있는 날. 그 조용한 외로움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비가 단순한 감성의 배경이 아니라 삶의 은유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비를 맞는다. 예고 없이 쏟아지는 슬픔, 이유 없는 우울, 때론 멈춰버린 듯한 고요한 막막함. 그런 시간들은 우리를 조금씩 젖게 만들고, 걷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럴 땐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삶은 마치 끝없는 회색빛 같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반복될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가’라는 자책이 비처럼 가슴을 적신다. 그리고 그런 날엔, 하늘을 봐도, 사람을 봐도, 나 자신조차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비는 결국 멈춘다. 아침이 오면, 믿기 힘들 정도로 맑고 투명한 하늘이 펼쳐진다. 어제의 먹구름이 말끔히 사라지고, 햇빛이 비친다. 그 순간이 오면 생각하게 된다. ‘비가 내려서 더 맑아졌구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비가 없었다면, 나는 평범한 날의 고마움을 몰랐을 것이다. 젖은 마음을 말리는 햇살의 따뜻함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괜찮은 날이 소중한 이유는, 괜찮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낙담하지 말자. 슬픔이 온다고 해서 그 감정에 나를 다 던지지 말자. 비는 감정이다. 흐르고 흘러 결국은 지나가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우산을 펼치고, 조금 더디더라도 천천히 걸어가는 일이다.


내가 젊은 시절 비를 좋아했던 진짜 이유는, 아마 그 비가 끝나고 나면 더 맑아질 거라는 희망을, 그때는 모르면서도 마음 한편에 품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사람은 생각보다 회복력이 크다. 비에 젖은 만큼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맑아진다.


그러니 오늘 조금 흐린 마음이어도 괜찮다. 비는 삶을 정화시키는 일종의 의식일지도 모른다. 눈물도, 후회도, 아픔도 다 지나가고 나면 한 줄기의 햇살처럼 나를 더 밝게 비출 것이다.


오늘 하늘은 유난히 맑다. 구름까지도~


한 줄 생각 : 비는 모든 것을 맑게 한다. 삶도, 마음도, 결국은 그렇게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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