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숲은 말없이 그늘을 내어 주었다

나무처럼

by 서담


어느덧 한여름의 기세가 성큼 다가왔다. 오전 시간임에도 온도계는 이미 30도를 훌쩍 넘기고, 햇살은 머리 위에서 무자비하게 쏟아진다. 차라리 가만히 서 있기조차 버거운 이 열기 속에서, 나는 본능처럼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들이 촘촘히 들어선 그 길은, 어김없이 내게 그늘을 내어주었다. 서로 부딪히며 자란 가지들은 어깨를 맞댄 듯 서로의 틈을 메우고, 햇볕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조용히 막아준다. 따가운 빛은 나뭇잎 위에서 부드럽게 걸러지고, 그 아래로 부는 바람은 손등을 스치는 듯 시원하고 정겹다.


매미는 한껏 들떠 노래를 부르고, 어딘가에서 새들은 서로를 부르는 듯 맑은 소리를 울린다. 어떤 악기도 필요 없다. 이 숲은 그 자체로 완벽한 오케스트라다. 나는 그 가운데 앉아 눈을 감는다. 땀이 마르고,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잔잔해진다.


문득, 이런 평온함 속에서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내가 이 숲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숲은 한 번도 계산하지 않았다. 그늘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늘을 내어주고, 바람이 간절한 순간엔 시원한 숨결을 건넨다. 누군가가 찾지 않아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자라며 자연스레 그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말없이 챙겨주고, 큰소리 없이 곁을 지켜주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타인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마치 이 나무들처럼.


그런 존재들은 늘 우리가 바쁠 땐 보이지 않다가도, 지치고 힘겨운 어느 날 문득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저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그 곁에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는 사람들. 그들이 우리 삶의 그늘이 되어주는 이들이다.


나는 이 숲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그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필요할 땐 조용히 다가서고, 말보단 마음으로 머물러줄 수 있을까. 눈에 띄지 않지만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숲은 가르치지 않지만, 배울 것이 넘쳐난다. 경쟁하지 않고도 서로 자라나는 나무들. 누군가보다 앞서기 위해 누르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빛을 나누는 삶.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태도.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직하게, 성실하게, 그늘을 내어주며. 누군가가 찾아올 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 폭염 속에서도 내가 찾은 평온함은, 어쩌면 단순한 숲 속 산책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조용히 들려주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주는 일에는 이유가 없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의 따뜻함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다는 것.


숲에게 고맙다. 말없이 그늘을 내어준 그 마음이, 오늘 내 마음 한켠을 적신다.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감사히.


한 줄 생각 : 그늘은 말이 없다. 다만, 필요한 사람에게 조용히 머물러줄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흔들려도, 스스로를 지키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