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도착하는 삶

편함과 불편함

by 서담

아침 햇살이 도로 위에 찰랑이는 물처럼 퍼진다. 출근길의 정체 속에서 버스와 승용차들의 행렬을 바라보다 든 생각, 언제부턴가 우리는 너무 빨리 도착하려 애쓴다. 빠르게 이동하고, 빠르게 정리하고, 빠르게 잊는다. 성공도, 회복도, 관계도, 인생도..그저 효율과 성과의 이름 아래 달리고 또 달린다.


승용차는 편하다. 에어컨이 공기를 정리해 주고, 내비게이션은 고민을 대신한다. 가속페달 하나로 거리와 시간을 접어들 수 있다. 고속도로 위를 질주할 때면 내가 조금은 능률적인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가끔, 창문 너머로 스쳐가는 풍경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스로 발견한 들꽃 하나, 무심코 지나친 작은 골목의 이름, 멍하니 쳐다보던 낯선 하늘색 같은 것들. 모두 ‘목적지’라는 단어 아래 생략된 채로 사라진다.


반면 걷거나 자전거는 느리다. 시끄럽다. 덜컹거리는 길 위에서 온몸으로 진동을 받아야 한다. 햇살은 온몸을 감싸 안고 금세 땀방울로 변해 목과 등으로 스며들고, 바람은 뺨을 때린다. 페달을 밟는 건 늘 예상보다 무겁다. 누군가는 그런 내 모습이 답답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느린 속도 덕분에 나는 멈춰 설 수 있다. 길가에 핀 다양한 꽃들을 들여다보고, 어젯밤 노숙을 하고 지나가던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바퀴 아래로 깔리는 낙엽 소리를 듣고, 어느 이름 모를 골목에서 오래된 콩나물국밥집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금 내 옆을 지나간 작은 장면들은, 빠른 길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빠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느림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나를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이 있다. 예정에 없던 정차, 필요 이상으로 돌아간 길, 헛디딘 발걸음. 그 안에서 웃고, 때론 울고, 무언가를 놓치고, 또다시 줍는다. 불편함은 삶이 나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너,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니?”라고.


모두가 빠르게 살고 싶어 한다. 가능하면 편하고, 정확하고, 실수 없는 인생으로.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우리 삶은 종종 빙 돌아서, 어딘가에 잠시 멈춰 서야만 비로소 나아간다. 그 순간들을 마다하지 말자.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이, 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가끔은 속도를 늦춰도 괜찮다. 느리게 도착한 그곳이, 어쩌면 가장 나다운 장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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