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도 직책도 명예도 내려놓을 때...
“사회의 신참으로 - 왕년은 잊어라”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장인이 직장을 옮기는 간격은 평균 2년 여 가량이다. 물론, 직장을 옮기는 일은 익숙한 환경에서 일하는 데 익숙해 있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하더라도 일을 하다 보면 금세 적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전역은 차원이 다르다. 군대는 다른 직업군과의 연계성이 부족하거나 아예 동떨어진 직업일 수밖에 없다. 군대 내에는 수많은 기밀이 있고, 무기를 다루거나 설치하거나 살상하는 기술들은 군대의 폐쇄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것들로서, 특수한 전문직으로써 일반 사회에서 요구되는 노동 방식, 지식, 업무 환경 등을 습득, 숙달하기에는 제한이 많다.
그러나 전역 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전역 군인들에게는 그동안 익혀 왔던 폐쇄성이 심각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군 복무를 하는 과정에서 익혔던 리더십, 근면성, 책임감은 뛰어나다. 그러나 전역하는 시점이나 그들의 연령대를 생각할 때, 그것만 가지고 직장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익숙해진 직장에서 한창 일하다가 어느 날 거의 상관없는 직장으로 옮겨 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청년 실업이 넘쳐나는 실정에서 40대 중반이나 50대 초반의 나이에 사회에서 재취업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생계유지와는 무관하게 중․장기 복무 전역 군인 대부분이 취업을 희망하고 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타의에 의해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40세 이상 위관 장교 및 소령급의 취업도 방산업체나 무역 대리점, 예비군 지휘관, 비상기획관 등 대부분이 군과 관련이 있는 직종으로서, 민간 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현행 군 복무는 전역 후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헌법 제39조의 2에서는 ‘누구든지 병역 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군 복무 기간 동안의 취직과 학업에 제약을 받는 등의 손실과 관련하여, 현재 국방부에서는 현행의 군 복무 이후 어떠한 경력 인정이나 보상도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군필 남성들은 병역의 의무에 따른 손해를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다.
실제 일반 병사로 군대에 갔다 온 남성의 경우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취업이나 학업 등의 이유로 군대를 가기 2년 전부터 자신의 계획을 수정해야 하고, 전역 후 사회에 적응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을 더하면 국방의 의무로 부담하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병사들은 언제라도 전투에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피해 또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일반 병사들도 이럴진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장기간 복무하다가 전역한 군인은 어떨 것인가?
20대 취업률이 바닥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30~40대의 군 경력이 전부인 그들에게 취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장기 복무를 선택한 위관 장교가 영관 장교로 진급하지 못하면 근속 정년에 걸려 15년 이상 근무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그리고 연령 정년이 적용되는 중사는 원사로 진급하지 못하면 45세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 또 소령 이상부터는 해당 계급에서 진급이 3회 누락될 경우 계급 정년까지 진급 기회가 줄어들어 그대로 전역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소령으로 만기 전역하면 연금 수령은 가능하지만 한창 사회생활을 해야 할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전역하는 것이기에 재취업이나 창업 등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군인이라는 직업은 사회적 시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군인들이 전역한 후 사회 복귀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매년 전역하는 군인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어렵게 취업을 한다고 해도 업무 적성이 맞지 않거나 적응력이 떨어져 이직 횟수가 평균 3.5회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는 적성과 능력에 맞지 않는 일자리에서 일하면서 얻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전역 군인의 평균 연령대를 보더라도 이들이 취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한 가정이 파괴되는 상황과 비슷할 수 있다. 전역 군인의 취업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면서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당신은 전역을 앞두고 있는가? 전역을 하였는가?
일단 축하한다. 사회의 신참이 된 것을…….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내용이 있다.
실수하면 안 된다. 실패해도 안 된다. 실수와 실패는 군대에서 얼차려 몇 번이면 끝나지만, 사회에서의 실수와 실패는 불행한 노후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물론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재기의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숙한 준비로 사회에서 돈과 시간을 모두 날릴 즈음, 당신은 늙어 있을 것이고,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것이며, 재기의 기회는 젊었을 때보다 몇 곱절은 더 힘들어진다. 결국 삶을 자포자기해야 할 수도 있다. 되는 대로 살아가는 비굴함과 비참함 속에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병 교육대를 생각해 보자. 무척 힘든 훈련의 연속이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 정신과 신체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수와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신참이 되었다면, 사회라는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 정신과 신체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군대에서처럼 실수와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은 없겠지만, 재산과 건강, 그리고 가족을 잃을 수 있다. 나 하나 죽으면 끝이 아니라, 가족의 목숨과 미래가 달린 문제가 된다.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주문을 하고 싶다. 잘 나가던 왕년은 모두 잊어야 한다. 아니 내려놓는다는 게 어울릴 게다. 계급도, 직책도, 명예도 모두 다……. 나는 신참이기 때문에 무조건 배우고 익힌다는 각오를 갖도록 하자. 그래야 산다.
勝兵先勝 (승병선승) 而後求戰 (이후구전)
敗兵先戰 (패병선전) 而後求勝 (이후구승)
이기는 군대는 승리할 상황을 만들어놓고 전쟁에 임하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일으킨 다음 승리를 구한다
- 손자병법. 軍形篇(군형편) -
전역 후 세상과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손자병법>의 말대로 싸우며 이기려 하기보다 제발 이겨 놓고 싸우자. 이순신 장군도 그렇게 이겼다. 절대적인 불리함 속에서도 고작 열두 척의 배로 그렇게 이긴 것처럼 말이다.
군 전역자들 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이순신 장군이 처한 막막한 전쟁처럼 철저히 불리할지 모른다. 고작 열두 척으로 수백 척의 적군과 맞서야 하는 그 답답함, 바로 그 심정일 것이다.
그래도 이순신 장군은 승리했다. ‘선승구전(先勝求戰)’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의 열두 척 배처럼, 우리에게는 다양한 인간관계 경험, 강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력이 있을 뿐 아니라 빛나는 눈치, 노련미와 시간, 그리고 아직은 공부하기에 알파고보다 뛰어난 머리가 있다. 비록 사회 신참이지만 나름 괜찮은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