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어느 때보다 여유롭다. 삶은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마음은 안정감을 알고, 일상은 편안함을 배운다. 그 위에 얹힌 행복은 작고 소박하다. 바람이 적당히 부는 오후의 창가, 커피 향에 스미는 따뜻한 순간처럼 은근하게 번진다. 나는 종종 이런 때, 과거의 기억이 소환된다.
지금보다 나았던 시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겹고 아팠던 시간들 말이다. 그 기억들은 늘 눈물과 함께 떠오른다. 자격지심에 눌리고, 피해의식에 갇히고, 세상이 불공평하게만 느껴지던 날들. 내 안은 늘 고통으로 가득했고, 작은 행복조차도 손에 닿지 않는 듯 멀게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들을 쉽게 지워버릴 수가 없다.
왜일까. 고통은 분명 나를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지금의 나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때의 상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이 과연 같은 무게로 다가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아픔 속에서 성숙했고, 눈물 속에서 성장했다. 상처의 흔적이 깊을수록, 지금의 편안함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기억은 숫자로 매겨지지 않는다. 행복이 10이었고 고통이 5였다고 해서, 행복이 두 배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억은 마음속 감정으로 남는다. 그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쉬이 바래지 않는다. 고통의 순간은 고통으로, 감사의 순간은 감사로, 행복의 순간은 행복으로 새겨진다. 그렇게 층층이 쌓인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는 가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의 나는 분명 아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자격지심 속에서도 발버둥 쳤고, 피해의식에 짓눌리면서도 여전히 살아내려 했다. 그 치열함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에게 여유가 가능하다. 그때의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웃음이 더 따뜻하다.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 고통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삶은 때로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그 잔인함 속에서 우리는 자라난다. 마치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봄을 더욱 기다리게 하고, 그 기다림 끝에 피는 꽃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러나 이 행복은 고통과 단절된 행복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과 이어져 있다. 지난 시간의 아픔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새로운 의미로 변해 있다. 그 의미는 감사다. 살아냈다는 사실, 견뎌냈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다.
기억은 언제나 이중적이다. 고통을 다시 불러오지만, 동시에 그 고통을 견뎌낸 나를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과거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기억들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나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앞으로의 나를 준비시킨다.
행복만으로 성숙하지 않는다. 성장은 아픔의 토양에서 피어난다. 그 고통은 결국 나를 넘어서는 길을 열어준다. 이제 나는 안다. 아픔이 주었던 눈물과 두려움이, 결국은 오늘의 행복을 더 단단히 붙잡게 해주는 선물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