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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는 친구

그 자리에 있어주는 마음

by 서담
친구야!


친구라는 말은 참 따뜻하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부터 마음 한편이 조금은 풀어지는 단어. 그러나 ‘진정한 친구’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그 의미는 무게를 가진다. 그때부터 우리는 묻기 시작한다.

‘과연 나는 진정한 친구를 갖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일까?’


오랜만에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갔다. 서로의 직장 이야기, 가족 이야기, 아이 이야기. 웃음소리와 건배사로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나는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모두들 겉으로는 여유롭고, 성공적으로 보였다. 그 속에선 자신을 내보이기보단 서로의 삶을 포장하고 있었다. 마치 “나는 잘 살고 있어”라는 표식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처럼.


술잔을 부딪치며 웃던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자리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게 맞을까? 한때 같은 강의실에서 웃고 울던 사람들, 같은 꿈을 꾸던 이들이 이제는 서로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진정한 친구는 화려한 순간에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두운 시간에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잘 나가던 시절엔 술자리도 많았고, 전화도 자주 걸려왔다. 하지만 내가 아플 때, 마음이 무너졌을 때, 그때 연락을 주는 친구는 손에 꼽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중 대부분은 늘 조용하던 친구들이었다. 늘 앞에 나서지 않고, 연락이 잦지도 않았던 사람들. 그들이 나를 향해 남긴 짧은 메시지 한 줄, “괜찮지? 그 한 문장이 그 어떤 위로보다 깊게 스며들었다.


보이는 관계보다, 느껴지는 관계가 있다. 친목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친구보다, 멀리서도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친구가 있다. 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대신, 조용히 내 글을 읽고 진심으로 미소 짓는 친구도 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마음의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다.


한 번은 오랜 친구와 오해로 멀어진 적이 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생각했고,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관계는 말하지 않으면 쉽게 멀어진다. 시간이 흘러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그때는 미안했다.”

그 말 한마디에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 나도 고마워.”

그 순간 깨달았다. 진정한 친구는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흘러도 마음의 자리를 비워두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진짜 친구는 어려울 때 드러난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진짜 친구는 어려울 때도, 아무 일 없을 때도 변하지 않는다.”

굳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저 ‘네가 있어서 좋다’고 느끼는 관계.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우정이다.


사회가 바쁘고, 사람의 관계가 얇아질수록 우리는 자꾸 ‘보이는 관계’를 선택한다. 활발히 움직이는 친구가 더 대단해 보이고, 조용히 응원하는 친구는 점점 뒤로 밀린다. 하지만 관계는 숫자나 빈도로 깊어지는 게 아니다. 마음이 닿는 방향, 그것 하나로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연락이 뜸한 친구들이 있다. 서로의 생일을 챙기지 않아도, 언제 만나자 약속하지 않아도, 그 친구의 이름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건 분명한 신호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는 친구가 있다는 증거다.


진정한 우정은 화려한 말보다 묵묵한 존재감에 있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마음. 그건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 귀하다. 왜냐하면 그런 친구는 인생에서 몇 번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일까? 누군가가 나를 떠올릴 때,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존재일까? 친구란 결국, 삶의 어느 지점에서 서로의 온도를 나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말이 없어도, 자주 만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사람.


친구라는 단어 하나에도 수많은 얼굴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얼굴은, 조용하지만 확실한 믿음이 깃든 얼굴이다. 바쁜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곁에 있는 얼굴. 그 얼굴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다.


진정한 친구는 함께 웃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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