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아버지의 편지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늘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야 하는 일이다.
말 한 줄에 담긴 감정이 넘치면 짐이 될까 걱정이고,
너무 절제하면 진심이 닿지 않을까 망설이게 된다.
군에 간 지 벌써 5년.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처음 네가 “아빠, 장교로 가려고 해요”라고 말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여리고, 순하고,
남의 아픔에 먼저 반응하던 너였기에
나는 뿌듯함보다 걱정이 앞섰다.
혹여 상처를 더 많이 받지는 않을지,
너무 많은 책임을 혼자 떠안게 되지는 않을지 말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아버지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네가 걸어온 지난 5년은
걱정보다 훨씬 단단했고,
예상보다 훨씬 성숙했다.
5개월의 지휘과정을 마치고
너는 중대장이라는 이름으로 첫 신고를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
나는 문득 30년 전의 한겨울로 돌아갔다.
그때의 나 역시
낯설게 무거운 계급장을 어깨에 얹고
중대장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눈 덮인 연병장,
낡은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가 책임진다’는 말이
얼마나 큰 무게인지 실감하던 그날.
더욱이 네가 근무하게 될 부대가
15년 전, 아빠가 작전과장으로 근무했던
바로 그곳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만들어낸 우연치고는 너무도 묘했다.
한때 아빠가 지휘하고 고민했던 자리에서
이제는 네가 지휘관으로 서게 된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말없이 오래 생각에 잠겼다.
지휘관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권한을 갖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위치에 서는 일이다.
백 명이 넘는 부하들의 하루를 관리한다는 것은
보고서 몇 장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의 잠, 식사, 훈련, 휴식,
그리고 혹시 모를 위기의 순간까지
모두 네 판단의 연장선 위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지휘관에게는
능력보다 먼저 자기 관리가 요구된다.
솔선수범, 절제,
그리고 가혹할 만큼의 자기 통제.
사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순간의 인기나 편의에 기대지 말며,
언제나 공인(公人)으로서,
국가의 몸을 맡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아버지로서 꼭 말해주고 싶다.
너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훈련 성과도, 평가 점수도 아닌
병사들을 무사히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이 사고 없이, 상처 없이,
군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휘관으로서의 모든 판단을 그 기준 위에
두어야 한다.
엄마와 아빠는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창밖에서
365일 펄럭이는 태극기가
너의 지휘 과정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할 아들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늘,
너는 중대장으로 서고
아버지는 한 걸음 뒤에서 경례를 보낸다.
앞에 서는 너를 밀어내지 않고,
그러나 언제든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사랑한다, 아들.
지휘관의 책무에 충실하되
끝까지 사람을 잃지 않는 군인이 되길 바란다.
아빠는
언제나 뒤에서
조용히 너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