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해를 건너온 한 통의 전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잠깐의 공백 뒤, 익숙하면서도 오래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대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우성입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시간은 단숨에 접혔다.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한 장면으로 되돌아왔다. 정확히 서른 해 전, 인접 소대원이었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긴장을 나누며 지냈던 병사였다. 특별히 각별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얼굴을 보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다.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그런 ‘편안함’은 오히려 더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전화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십 년 전 한 번, 그리고 이번이 다시 한번.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문득 생각이 났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고, 그래서 더 진심처럼 들렸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안부 몇 마디, 서로의 시간을 훑는 조심스러운 질문들. 그런데 그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소대장님 같은 분이 계속 군에 계셨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그 말이 과분하게 느껴져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것도 한 시기의 기억 속에서 내가 그렇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소한 그의 기억 속에서 나는 나쁘지 않은 상관이었구나. 그 사실 하나로도 마음 한편이 조용히 놓였다.
나는 군대에 미련이 없다. 이미 충분히 살았고, 충분히 책임졌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한 통의 전화는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시절의 나는 두려움도, 계산도 많지 않았다. 무서울 것도 별로 없었다. 다만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에너지가 있었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감각이 몸에 배어 있었다. 잘하려 애쓰기보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젊음이었고, 장교라는 역할이었고, 동시에 미숙함이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판단이 빠르지 못한 날도 있었고, 말이 부족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외면하지 않으려 애썼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아마도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그런 태도였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결과보다 태도로 기억된다는 말을,
다시 실감했다. 삼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계급도 역할도 모두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은 ‘그때 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했는가’라는 감정의 잔상이다. 그것은 훈장처럼 빛나지도 않고, 기록처럼 남아 있지도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젊은 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잘하려 애썼던 시간, 책임을 피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삶 한편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저 그 시기,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인생은 종종 그런 ‘충분함’을 나중에서야 알려준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처럼, 예고 없이, 조용히.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하지만 가끔, 이런 전화가 오면 서른 해 전의 청년 장교가 옅은 미소로 잠시 나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