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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일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자리

다움의 법칙

by 서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군생활 동안, 그리고 제대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마음 한가운데 놓여 있다. 군 시절 처음 ‘다움’이라는 말로 지휘했을 때, 나는 한 가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현상의 멋은 ‘~다움’에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우면 되고, 자식은 자식다우면 된다. 군인은 군인답고, 시민은 시민다워야 한다. 겉모습이 번지르르하다고 해서 사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겉의 껍질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벗겨지지만, 내면의 ‘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향기를 낸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본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들, 원칙보다 편의를 앞세우는 모습들, 불의와 타협하는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세상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 원칙은 불편하고, 소신은 때로 위험하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게 된다는 것을.


군에서 근무할 때 나는 매일 이 질문을 품었다.


“나는 지금, 나다운가?”


혹한의 GOP에서든, 작전과의 불 꺼지지 않는 사무실에서든, 수많은 보고서와 판단의 순간마다 나는 늘 이 기준으로 나를 붙들었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상황과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자리에 선 ‘나’에게 요구되는 다움을 지키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군인의 원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품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준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움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고, 태도는 결국 삶의 품격이 된다. 요즘은 무엇이든 빠르게, 쉽게, 그럴듯하게 포장되는 시대다. 말 한 줄, 글 한 문장도 우아하게 다듬을 수 있고, SNS에서의 삶은 마치 영화처럼 반짝거린다. 그러나 나는 안다. 다움은 기교가 아니라는 것을. 기교는 잠시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지만 다움은 오래도록 마음을 설득한다. 기교는 빛이 나지만 다움은 향기가 난다.


군에서 수많은 부하들을 지휘할 때, 나는 그들의 능력보다 ‘다움’을 먼저 보려 했다. 군인다움, 사람다움, 동료다움. 그 다움이 갖춰지지 않은 능력은 오히려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저마다의 ‘본색’이 있다. 그 본색이 진실할 때, 그 사람은 단단해진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살다 보면 어떤 자리는 너무 무겁고, 어떤 순간은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오늘을 다하면 그게 곧 다움의 시작이라는 것을. 사람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특별한 성공이 아니라 매일의 태도, 매 순간의 선택이다. 그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나다움’을 만들어낸다.


군복을 벗은 지 오래이지만 그 시절의 마음가짐 하나는 여전히 나를 지탱해 준다. 흔들려도 흐려지지 않는 중심, 그것이 바로 다움의 법칙이다. 가을 열매가 알알이 익어가듯 내 안의 다움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영글어가면 좋겠다.

속이 꽉 찬 열매가 풍기는 진한 향기처럼, 누군가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나의 다움이 은은한 따뜻함으로 전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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