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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수 없는 '충성'이라는 이름

언제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존재

by 서담


군인은 왜 군복을 입는가. 그 옷은 직업을 알리는 표식이 아니다. 한 개인의 삶을 국가와 국민에게 잇는, 묵직한 약속의 장치다. 군복의 무게는 천의 무게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다.


우리는 평소에 입는 옷과 마지막을 맞이할 때 입는 옷이 다르다. 하지만 군인은 다르다. 복무 중 생을 마감한다면, 그 마지막 순간조차 군복 그대로다. 군인의 수의(壽衣)는 언제나 군복이다.


그 말은 곧, 일상이 전장이고, 전장은 일상의 연장이라는 뜻이다. 생과 사가 따로 분리되지 않은 삶. 숨 한 번, 걸음 한 번에도 국가를 품어야 하는 숙명이 그 속에 있다.


지난 12.3 비상계엄의 어두운 그림자. 이 나라가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은 벌써 1년이 넘도록 우리 모두에게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군인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지휘관인가? 권력인가? 명령인가? 아니다. 군인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우선의 대상은 헌법, 그리고 국민이다. 전쟁이 아닌 한, 그 어떤 이유로도 군인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 군복이 허락한 권한보다 더 앞에 있는 것이 군복이 품은 양심과 충성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흔히 이렇게 부른다.

“前 00 회사 대표”,

“前 00 연구원”,

“前 00 센터장.”


하지만 군인은 다르다. 前 군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예비역 군인. 전역군인. 퇴역군인.


그 속엔, “당신은 아직 국가가 부르면 다시 서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군복을 벗어도 끝나지 않는 책임. 그것이 군인의 정체성이다.


젊은 시절, 피가 끓던 마음으로 국방의 무게를 짊어졌던 시간들이 지금은 조금 희미해진 것도 사실이다. 체력은 예전만 못하고, 전장이었던 부대의 풍경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충성의 마음만큼은 한 번도 벗은 적이 없다.


군복은 벗을 수 있지만 군인의 정신은 벗겨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전역하면 군인 정신도 끝나는 거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군인으로 살아온 시간들은 내 안에 믿음의 근육을 만들고, 책임의 척추를 세웠으며, 용기의 심장을 남겼다. 예비역이라는 말은 ‘예비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언제든, 나라가 위험에 처한다면 다시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다.


군복을 입고 국가 앞에 섰던 그 순간, 우리는 모두 하나의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한 번 군인으로 시작한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든 어떤 나이에서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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