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장사들에 대한 단상

나는 어떻게 책 장사 쓰레기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나?

by 가을언덕

아버지의 서재에는 이상한 잡지들이 많았다. 가방끈 짧던 어머니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낡디 낡은 우중충한 표지의 책들은 어느 날 지나가던 동네 고물상 아저씨의 리어카에 근의 무게로 달려 개똥 치우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날이 내가 기억하는 한 부모님 사이에서 가장 근원적인 문제로 부부 싸움이 발발한 날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잡지들이 "사상계"였다는 것을...


서른아홉 늦은 나이에 초혼도 재혼도 아닌 이상한 결혼을 했던 아버지는 이미 꿈도 희망도 사라진 다음의 생애주기로 접어들었고, 그의 유일한 소망이라고는 늦게 얻은 아들자식 하나의 머리를 틔워주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책 하나는 원 없이 읽어볼 수 있었던 내 유년시절은 그림도 없이 빼곡한 글씨들로 채워진, 동화책 없는 독서의 기억으로 점철되었다.


고지식하게 자라기 딱 좋은 환경만큼이나 태생적으로도 외곬이었던 유전자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고의 적응력을 보이며 성장해 결국 독서에 독서만을 거듭한 후 문학박사까지 되어버렸다. 그것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이자 굴레였고, 죽음의 순간까지 따라다닐 검은 휘장이었다. 딱 거기에서 멈추었으면 좋았을 타이밍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그저 맹목적으로 결승선을 향해서 뛰어간 경주마는 끝내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미 갈기가 불태워지고 발목이 꺾인 경주마는 이제 생활의 수레를 끌고 있다. 다만, 말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났기에, 여전히 말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며, 글을 쓰는 대신 글을 봐주고, 책을 읽는 대신 책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 주고 있다.


출판사.

원고 갖다 주러 다녀만 봤지, 거기에서 일해본 적은 없는 곳. 그것이 이제는 내 일터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썩은 글밥이라도 지식을 팔아 밥을 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지식이 생산되던 대학과 달리, 지식의 얼굴을 가장하고 나오는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는 상당히 많았다. 대학에서 만나던 사람들 속에서도 나를 비롯해 참 3류들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지식의 껍데기에 분칠을 해주고 돈을 버는 출판사들 속에는 3류로 분류조차 할 수 없는 등급외 분류대상들이 부지기수였다.


어떤 이는 그런 소리를 했다.

"저자를 위해 출판사의 문턱을 낮췄다."라고...

문턱이 낮아진 출판사 덕에 문턱에 턱걸이도 못하던 인간들은 돈을 싸들고 저자가 되기 위해 찾아들었고, 덕분에 우리나라 서점가에 출판사의 출간 종수는 대폭 증가했다. 덕분에 책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나라가 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처럼 값어치 없는 잉크 낭비와 종이 낭비가 없다.


그나마 저자를 위했다는 놈은 낫다.

장똘뱅이나 하던 놈이 돈푼깨나 번 후 제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지푸라기 한 올 만큼의 지적 탐구심과 교양도 없이 출판사 대표를 자처하고 나서는 경우도 있다. 책은 분명 콘텐츠지만, 그런 자들은 콘텐츠를 가장한 포장지를 팔 뿐이었다. 예쁘게, 무슨무슨 색으로... 거기까지가 그들의 한계였다. 석굴암 본존불상이 지닌 가장 큰 '옥에 티'는 바로 신라시대 당시에 거기에 채색을 했었다는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 나로서는, 항마촉지의 돌부처님을 아롱이다롱이로 만들어 놓은 신라 조상님들의 촌극을 깔끔하게 지워낸 세월의 힘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부디 돼먹지 않게 아롱이다롱이로 채색만 된 쓰레기 콘텐츠들도 석굴암 본존불상의 채색처럼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기원할 뿐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뇌가 사지를 지배하는 우리 육체와 달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출판사라는 조직은 돈의 노예가 되어 굴러가게 되어 있고, 이따금 눈 없는 돈이 썩은 종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던 것이 알고 보니 구역질 나는 포장지가 아니라 값어치 있는 양서가 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게 바로 이 바닥에서 느껴보는 유일한 삶의 희열이다. 설사 그 양서로 인한 트로피가 어느 장똘뱅이 출판사 대표의 손에 들려진다 해도 그저 반갑다. 그의 근육은 트로피를 들어 올릴 뿐이요, 그의 영혼은 그 책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니 말이다. 책은 책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는 자들의 전유물이다. 머릿속에 든 것은 누구도 도둑질하지 못한다던 아버지의 가르침처럼, 검게 박힌 것은 훔쳐낼 수 없는 진리요, 아롱이다롱이로 포장된 것은 유혹일 뿐이다.


고물상 리어카마저 사라진 지 오래인 시대, 오늘도 나는 개똥처럼 속시원히 치워버려도 아깝지 않을 것을 책이랍시고 만드는 쓰레기 대열에 끼어서 밥을 빌어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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