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창출하느냐, 제품을 만드느냐
저자가 되는 데에는 넘어야 할 허들이 참 많다.
일단 원고 집필 자체부터 문제가 된다. 집필이 어렵다 보니 저자가 되는 첫 관문에서부터 진입이 힘들어지고, 그러다 보니 책의 기획과 집필 단계에서부터 저자의 역량과 콘텐츠의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 출판사가 저자와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어느 특정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갖춘 저자라 하더라도 출판사의 입장에서 그가 작성한 원고를 보면 어디엔가 보완할 측면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콘텐츠 가치를 지닌 원고라면 그 보완점을 함께 메워가고 완성도를 높여 시장성 있게 키워가는 게 출판사의 역할이다. 소위 기획출판의 형태가 바로 그렇다.
보통 정상적인 책은 대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그저 공장처럼 제품을 만드는 곳도 더러 있다. 그런 출판사의 대표는 본인의 명함에 출판사 대표라는 이름 석 자 새겨넣으려고 책의 모습을 가장한 인쇄물을 찍어낼 뿐이지, 온전한 콘텐츠의 구실을 하는 지적 산물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또 그런 지적 산물을 제대로 감식할 눈조차 애초에 없는 출판사 대표가 종종 있긴 하다. 그저 원하는 것이라곤 편집비, 디자인비, 인쇄비, 유통비의 그 어느 중간에서 떨어지는 콩고물 뿐이다.
수년 전 출판문화진흥원에서 모 저자의 강연을 듣던 중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대한민국 출판사 대표 중에 생각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딱히 부정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적어도 그런 대표를 모시고 있지 않은 상황에 감사할 뿐...
어떤 사람의 사회적 가치관을 살펴보려면 그의 사회적 활동이 시작되던 20대에 무엇을 주로 만지면서 지냈는지를 보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책을 만지던 사람은 평생 그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고,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은 공장의 사고방식을 벗어나기 어려우며, 돈을 주로 다루던 사람은 돈의 셈법을 탈피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최근 자비출판사가 늘어나면서 서적 시장에 일종의 혼돈이 발생하고 있다. 그저 인쇄소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책의 형태를 지닌 인쇄물을 자주 접하다가 '나도 이렇게 생긴 물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싶어서 차린 자비출판사도 있고, 박스나 비닐 공장 사장이 포장지에 인쇄하다가, '종이에도 인쇄할 수 있겠는데...'싶어서 차린 자비출판사도 있을 것이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미약한 시작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종이 인쇄물에도, 박스에도, 비닐 포장지에도 잘못은 없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끝이다.
겨자씨가 겨자씨로 그냥 땅속에 있으면서 나무의 행세를 하려고 들면 그때부터 문제가 된다. 형태가 아니라 본질을 끝까지 보지 못한 채 마감하며, 업(業)의 정신을 파악하지 못한 채 콩고물에만 눈이 멀면 그때 문제가 생긴다.
가뜩이나 책이 지적 산물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독점적 지위를 점점 잃어가는 세상에서, 공장식 마인드로 인쇄물을 뚝딱 찍어내서 책의 형태로 팔아먹는 풍경을 보노라면, 흡사 스스로를 잠식해가는 성스러웠던 어느 종교의 몰락을 바라보는 듯하다.
책을 안 보는 세상이 아니라 볼만한 책이 점점 사라지니 안 볼 뿐인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