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어가 어려운가 인간어가 어려운가?

AI시대에 편집자 해 먹기 정말 까다롭다.

by 가을언덕

텅 빈 원고지에 사람이 몇 자의 글을 쓴다.

쓰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고, 해도 되는 이야기, 하다 보면 큰일 날 소리,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 등등 다양한 글자가 논리와 비논리의 경계를 허물고 빼곡하게 삶의 행간을 채워간다.

그중 더러는 명문장도 있고, 더러는 비문도 있으며, 오탈자에, 윤문까지 해줘야 하나 싶을 정도도 있다.

그래도 그 하나하나가 인생의 옹이다. 소중하다. 그걸 고치고 바로잡고 하는 게 편집자의 맛이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AI다.

이걸 등장인물이라 해야 할지...

글의 맛이 다르다. 사람의 글이 아니다. 평생 글만 보고 산 눈인지라 대략 몇 단락만 읽어봐도 사람 냄새 대신에 반도체 실리콘의 냄새가, 적당한 유분과 호르몬의 체취가 아닌 윤활유의 냄새가,

삶의 땀과 눈물이 아닌 무수한 경험치로 학습된 가짜의 냄새가 금방 맡아진다.

문제는 문법구조에 맞아도 사람의 글 같지 않은 것에 화장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참 묘하게도 문법에는 맞지만 기괴스러운 문장이 원고지마다 마치 빨간 벽돌집의 벽돌 조적 구조 사이에

갑자기 끼어든 이물질처럼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차라리 이 불쾌한 계곡이 빨리 극복되었으면 싶을 때마저 있다.

아예 나를 속여줬으면, 미묘한 이물감조차 느껴지지 않게...

책은 돈을 주고 남의 인생을, 경험을 들여다보는 행위다.

제발 그 경험과 인생이 가짜가 아니었으면 한다.

부족한 글재주를 AI로 극복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의 업무 행정에서나 그런 한숨을 쉬고, 자기 경험과 인생을 파는 일에는 제발 정직했으면 한다.

AI 사용하는 잔재주를 삶의 진실성과 맞바꾸지 않았으면 한다.

삶은 정직하다.

가짜와 진짜의 구분은 가장 중요한 시점에 찾아올 것이다.

오늘도 저질 원고 한 편을 보면서 이런 단상에 빠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획출판과 자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