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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Jan 09. 2021

바르면 뜨거워지는 스포츠 크림을 만나다

2011 여름

대학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부모님은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사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지 사업 아이템을 정하고 말을 꺼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학교는 졸업하기를 바라는 부모님과 그 시간은 사업을 할 나에게 의미가 없다는 나의 입장 안에서 몇 차례 더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지만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방학이 끝나 다시 가을학기로 미국으로 들어가야 했던 나는 최대한 빠르게 대학을 졸업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미시간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남아있는 학기를 가장 빠르게 마치는 것에 목적을 두고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아직은 4번의 학기, 2년을 더 지내야 졸업이 가능했고 나는 가장 빠르게 4학기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정규학기에는 대학 근처에 있는 community college, 우리나라로 보면 2년제 대학에서도 수업을 들어서 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정규학기에는 대학과 전문대학에서 학점을 들어서 38학점을, 나머지는 겨울과 여름 계절학기를 모두 이수하기로 계획했고 결국 2011년 여름 계절학기까지 이수하며 졸업학점을 만들어서 1년 내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2009년 편입해서 5번의 정규학기, 2번의 계절학기를 통해 2년 반에 졸업을 했고 같은 나이의 친구들보다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 먼저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요즘도 가끔 주변에서 유학생 친구들은 미국에서의 학교생활이 그립다는 얘기를 종종 하고 추억을 얘기하지만 사실 나에게는 별다른 추억이 없다. 적응을 하느라 미국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며 보낸 1년 반, 빠른 졸업을 위해 수업 운동 기숙사 외에는 추억에 남을 여행도 별로 다니지 않았던 1년의 미시간은 나에게 미국이란 나라가 주는 로망마저 남기지 않았다.


그 무미건조한 미국 유학 생활이 남긴 것은 또래 친구들보다 1년 빠른 졸업. 그리고 높은 학점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받은 하이 어너 (with high honor) 졸업. 부모님은 좋은 학점으로 빠르게 졸업한 아들이 취업으로 마음이 바뀌었을까 하는 기대가 있으셨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이미 나에겐 사업 아이템이 있었다.


미시간에서 열심히 학점을 따고 있었을 즘에는 이미 머릿속에 한국에 가서 사업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기에, 대학에서도 한국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위해 한인 커뮤니티 활동도 병행했었다. 한인 축구팀에도 가입하고, 회계 전공 학생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 부회장도 맡았다. 그때쯤엔 종종 한국에 가서 사업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선후배들과 나눴었고 그러던 중 한 선배가 아이템 하나를 제안했다. 그날도 회계 전공 한인 학회 모임이 있었던 날이었고 그 선배는 본인에게 제안이 온 아이템이 있다며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나를 데려가서 모니터에 사업계획서를 띄워주었다.


그 아이템은 스포츠 크림이었다. 한국에선 파스라고 해서 근육통이 있으면 운동 후에 바르거나 붙이는 것에 익숙했지만 미국에서는 운동 전 근육이 다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스포츠 크림 브랜드가 있다는 것이었다. 바르면 열이 올라와서 근육통을 예방하고, 기존의 파스 냄새가 나지 않는 크림이었다. 스포츠 시장이 훨씬 크고 운동선수들의 몸값이 비싼 미국에서는 충분히 있을만한 아이템이었다. 이미 미국 본사에는 박찬호 선수가 지분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파트너로 있는 브랜드였다. 선배의 지인인 미국 국적의 한국인들이 미국 본사의 주주이면서 동시에 브랜드에 대한 한국 판매권을 가지고 1-2년 정도 한국 사업을 진행했으나 모두가 미국에 살고 있다 보니 잘 진행되지 않고 있고, 내가 원한다면 그들을 연결해준다고 했다.


무엇 때문에 끌렸을까.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스포츠와 연관도 되어 있고,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스포츠 선수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막연히 좋았던 거 같다. 뻔한 근육통 크림도 아니고 사전예방을 돕는 크림이라는 컨셉이 한국 시장에선 커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2011년 여름. 26살이었던 나는 그 선배를 따라서 미국 국적의 한국인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 함께 시카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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