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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Feb 02. 2021

영화 ‘인턴’ 같은 성수동 사옥까지

2015년 여름- 2016년 여름

얼떨결에 법인을 설립한 대표들은 각자의 직원들을 모아서 학동역의 작은 사무실을 임대했다. 영상으로 마케팅을 해서,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시장에서 처음 시도했던 만큼 그 당시 효율은 엄청났었다. 떠올려보면 그때는 대단하다 느껴본 적이 없고 마냥 신기했던 것 같다. 인원도 이전에는 나를 제외하면 정식 직원이 2명인 회사였기에 회사라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았었는데, 각자의 회사 인원들이 합쳐지고 사무실도 생기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각 대표들이 모여서 함께 만든 회사였기에 대외적인 대표가 필요했고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 당시의 인터뷰들이 남아있다...


이때가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마침 부모님은 서울에서 분당으로 이사가 계획되어 있었고 나는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하겠다며 독립 선언을 했다. 막상 나오려니 가구 하나 없었던 나는 ‘효율’을 위해 회사에서 도보 3분 거리의 풀옵션 빌라를 월세 계약했다. 예산도 ‘효율’적으로 가성비를 따져가며 잡다 보니 말 그대로 풀옵션, 모든 가구가 있는, 은 맞았으나 전혀 고급스럽지 않은 원룸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효율이라는 키워드에 빠져있었는지 감성 따위는 던져버리고 합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했었다.


회사가 합쳐졌지만 인원이 열명이 안됐던 2015년 당시에는 월 매출 목표를 정해두고 달성하면 같이 해외여행을 약속하기도 했고. 실제로 너무 빠르게 달성해서 여름에 회사문을 닫고 다 같이 푸켓에도 다녀왔었다. 그렇게 조금은 진지해 보이지 않았던 두 번째 창업은 페이스북 마케팅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순항하게 되었다. 직원들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작은 학동역 사무실은 금방 좁아져서 학동역 사무실 만기도 못 채우고 그 해 12월에 강남 뱅뱅사거리로 사무실을 옮겼다.


참으로 강남스러웠던 뱅뱅사거리 시절 사무실



인테리어도 좋고 훨씬 이뻐진 사무실이 생겼고, 우리는 페이스북 마케팅을 통해 돼지 코팩 외에도 다른 뷰티 브랜드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새롭게 런칭한 브랜드들도 페이스북 마케팅을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당시에 급격하게 덩치를 키워나갔던 올리브영과 파트너가 되면서 회사 규모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회사 가까이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껴버린 나는 풀옵션? 학동역 빌라에서 나와서 신논현역 근처의 깔끔한 9평 원룸 오피스텔을 계약하고 들어갔다. 그때도 굳이 깨끗한 오피스텔까지 갈 이유가 있나 싶었는데 같이 일하던 대표들의 꼬심에 넘어가 스포츠카를 사버려서 주차장이 필요했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지만 내 차는 깨끗한 주차장에 세워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마음에... 그 오피스텔을 선택했다. 그 덕에 방에는 침대 하나 놓으니 여유 공간이 없었고 그 집에선 빨래를 하고 나면 건조대에 말려도 잘 건조가 안돼서 늘 퀴퀴한 냄새가 옷에서 났었다. 엄마를 만날 때마다 이 이유로 등짝을 몇 번이고 맞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수입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이든 차든 구할 때, 늘 가성비를 그렇게 따졌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효율적이고 가성비가 나오는지를 그렇게 따졌었다. 심지어 스포츠카도 하도 주위에서 얘기를 많이 해서 호기심에 한번 타보고 싶은 마음은 들었으나 더 비싸고 좋은 차는 선택하지 않았고 그 스포츠카 시장 안에서도 가성비 포지셔닝을 하는 차를 선택했었다. (이 차는 지금도 타고 있다...) 당시에 다른 회사 대표들과 워크샵을 가거나 할 때도, 편의점에서 늘 2+1 인 음료수를 찾고 있어서 욕을 한 바가지씩 먹었었다. 유난 좀 떨지 말라며. 나도 안 그러고 싶었지만 몸에 베여서 그게 자연스러웠다.


(내가 효율과 가성비라는 키워드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는 그 후에 벌어지는 나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당황스럽게도 함께하는 회사의 규모와 인원은 더 늘어나고 뱅뱅사거리에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우리는 사무실을 또 옮겨야만 했다. 경영진들은 어디로 사무실을 옮겨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지속적인 회사의 성장과 반복적인 사무실 이사에 지쳐 아예 큰 사무실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럼에도 너무 딱딱한 회사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지 않는 곳에 사무실을 가져보자는 마음에 우리는 성수동을 선택했다.


처음 봤을 때의 암담함이 떠오른다.. 이게 될까 싶었다


2016년의 성수동은 오늘의 성수동과 같지 않았다. 제금은 무신사도 성수동에 사옥을 준비할 정도로 스타트업, 벤처회사들이 모여있는 중심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우리의 선택을 모두 의아해했다. 게다가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사이즈는 이미 폐건물로 남겨진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에 인턴이라는 영화를 보며 천장이 높고 사무실 안에서 자전거도 타고 다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영감이 되어 눈 앞의 폐건물이 멋진 사무실로 바뀔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했다. 처음엔 이런 건물을 살려서 사무실로 쓸 수 있을까 싶었으나, 무모할 정도의 용기와 돈을 들이니.... 그것이 되었다.


그렇게 빨간벽돌의 참 성수동스러운 사옥으로

결국 그때의 선택은 옳았고 우리는 오늘 2021년에도 같은 성수동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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