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016년 겨울, 어니시honesi 브랜드는 나름 의미 있는 매출과 함께 성공적인 런칭을 했다. 시장에서 수요가 생길 것이라 믿고 그렸던 제품 구상이 소비자들에게, 또 시장에 인정을 받았기에 기뻤지만 그 기분도 잠시였다. 내가 세운 가설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는 것도, 협업했던 화상병원 회장님이 놀라운 성적을 냈다며 축하의 말씀을 전해오는 순간도 잠시였다. 그 후 어니시 브랜드를 위해 세팅한 팀장과 팀이 순조롭게 운영해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또다시 무엇을 할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알게 됐지만, 이때까지도 나는 왜 브랜드를 런칭한 후에 더 크고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에 관심이 적었고 또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졌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미 런칭된 돼지코팩 브랜드와 색조 브랜드인 머지도 이제는 대표를 맡게 된 친구가 운영하게 되었고, 얼마 전 런칭한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어니시도 팀장이 운영을 맡았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은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만큼 내게 흥미롭지 않았다. 창작활동처럼 나는 또다시 새롭게 만들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맡게 된 프로젝트는 성수동 사옥으로 옮기게 되면서 사옥 1층에 카페를 만드는 것이었다. 주력 사업이 아니었고 기본적으로는 회사 직원들 복지와 외부업체들 미팅에 활용될 수 있는 카페였기에 부담이 크거나 회사의 명운이 달린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카페 세팅을 맡았던 팀장과 즐겁게 기획하며 준비를 했다. 대부분의 기획은 팀장이 자율적으로 원하는 방향에 맞추어 진행하면서도 카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로부터 즐거웠다. 커피머신, 키친 안에서의 바리스타들의 동선, 소파의 배치, 음악, 조명까지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로서 카페를 준비하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그렇게 준비하여 오픈한 카페 GLOW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성수동에서 사랑받는 카페 중 하나가 되었다.
어니시honesi 브랜드와 카페 글로우도 세팅이 되고 팀장들이 운영을 맡아 진행하게 되었던 2017년 초에 나는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경험하게 됐다.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강남역에 있는 무인양품 스토어를 들렀었다. 모든 생활용품들이 너무나도 심플하고 아름다웠다. 심지어는 무인양품이 말하는 브랜드 철학과 그것을 오롯이 담은 스토어에 푹 빠져서 구경했다. 사고 싶었던 바구니, 숟가락, 젓가락 등 몇 가지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고 포스기계에 찍히는 가격을 보고 당황했다. 몇 개 사지도 않았는데 이미 포스기계에 찍힌 가격은 8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된 거 같았지만 그제서야 사지 않겠다는 것도 쪽팔려서 구매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구매한 제품을 쭉 펼쳐놓고 보니, 이런 생활용품들을 쓴다면 하루하루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밥을 먹을 때도, 과일을 담아둘 때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니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왜 보통 생활용품은 다 촌스럽고 이쁘지 않아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고, 이런 경험을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비싼 가격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성분과 좋은 디자인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생활용품 브랜드였다.
칫솔, 치약, 혀클리너로 시작했고 지금은 다양한 생활용품 제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나는 화장품이 아닌 첫 생활용품 브랜드, '생활도감'을 런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