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창 Apr 08. 2021

어디서 살 것인가

학동역 원룸부터 트리마제까지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첫 사업을 시작할 때는 부모님 집에서 함께 지냈다. 당연히 독립할만한 경제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었고 서울에 계신 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할만한 명분 또한 없었다. 첫 사업을 매각하고 미팩토리를 창업했을 때 경제적으로는 가능해졌지만 독립을 위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때 내가 찾은 명분은, 다른 것보다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함이었다.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8평짜리 단기 풀옵션 빌라를 찾아 들어간 것이 한국에서의 나의 첫 독립이 되었다. 사무실이 학동역 근처였던 때라 걸어서 5분 거리 이내의, 잠만 잘 수 있는 빌라의 작은 방을 임대해서 들어갔다. 침대도 티비도 옷장도 아무것도 살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게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사업적 성공이 우선이었던 나에게 가구, 인테리어, 도배, 장판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지내는 중에 회사가 성장해서 사무실을 학동에서 강남 뱅뱅사거리 쪽으로 옮기게 되었다.


학동역 근처에 사는 와중에 차를 매입했고, 내 돈 주고 산 당시에 인생 가장 비싼 차였기에 두 번째 살 곳의 우선 고려사항은 주차장이었다. 그 와중에 사무실과의 거리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신논현역 근처에서 주차장이 가장 깨끗한 오피스텔이 나의 두 번째 집이 되었다. 이번에도 9평의 원룸에 화장실 하나 있는 오피스텔이었지만 신축이라 깨끗했고, 가진 가구가 없었기에 침대 하나 티비 하나만 단출하게 사서 이사를 했다. 보통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이 그렇듯 옵션으로 빌트인으로 세탁기만 있었지 건조기가 없어서 늘 빨래를 하면 침대 옆에 건조대를 두고 말렸었다. 문제는 여름인데, 여름에는 보통 습도가 높아 잘 건조가 되지 않아서 늘 빨래한 옷에서... 냄새가 났었고 부모님 집에 한 번씩 놀러 가면 엄마에게 등짝을 맞기가 일쑤였다. 집에 들어와서 살라는 엄마의 등쌀을 꿋꿋하게 이겨내야 하는 시기였다. 그 덜 마른 옷들 때문에.


그렇게 두 번째 나의 집도 2년 월세 계약이 마무리되어갈 쯤이었다. 그 와중에 뱅뱅사거리에 있었던 사무실도 좁아져 사옥을 2016년에 성수동으로 옮긴 이후였다. 같이 창업한 대표 친구가 성수동에 트리마제라는 고급 아파트가 생기는데 미분양이라 매입을 할지 고민이 되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2년 전에 스포츠카를 사보라고 옆에서 부추겼던 그 친구가 이번엔 집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그때는 2017년이라 부동산이 전체적인 하락장세였고 심지어 트리마제는 미분양이 많이 나있는 상황이었다. 부동산 하락론자 중 한 명이었던 나 역시 매입은 옵션에 두지도 않았다. (2021년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강한 꿀밤을 한 대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집은 어차피 일하다가 잠만 자는 곳인데 굳이 이렇게 비싼 아파트에 살 이유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 친구 덕분에 샀던 스포츠카는 여러모로 나에게 다양한 경험과 인사이트들을 주기도 했었기에, 사는 곳은 또 나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월세로 계약을 하더라도 꽤나 부담되는 수준의 월세였지만 나이가 조금이라도 어릴 때 살아 보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때가 32살이었고 사업도 순항하고 있었기에 조금 무리라 생각이 들었지만 눈 딱 감고 계약을 했다. 그렇게 집주인도 살아보지 않은 이 집의 첫 세입자가 됐다. 9평 강남 원룸에서 38평 트리마제로 이사를 하자, 침대 하나 티비 하나 트럭에 싣고 온 이삿짐 아저씨는 나에게 로또에 당첨되서 이사를 하는 거냐고 웃음기 하나 없이 물어보셨다.

42층에 잠실 롯데타워, 한강, 남산까지 모두 보이는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그런 집을 계약했다. 그때부터 커튼으로 시작해 가구를 하나씩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 집에서 야경을 보니 몇 년 동안 열심히 살아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벅찬 마음도 잠깐 들었다. 그렇게 입주하고 2주 정도 지나니 그 감흥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트리마제도 결국 그냥 집이었다. 회사와 가깝다는 것 말고 다른 부분들은 빠르게 익숙해지고 소중함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가끔 가족들과 친구들이 놀러 오면 그 반응에, 아 맞다 나 이런 집에 살고 있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냥 누가 어디 사냐고 내게 물어봤을 때, 트리마제 산다고 하면 '아 거기 알죠' 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소재 정도였다.


조금 더 지내다 보니 연예인들도, 인플루언서들도 많이 산다며 기사와 방송에 나오기 시작했다. 19년쯤 되어서는 이 아파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한 번쯤은 들어봤을 핫한 성수동을 대표하는 아파트 중 하나가 되었다. 동시에 친구들도 내가 여기 사는 것을 알다 보니, 강변북로를 지나다 트리마제가 보이면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 주거나 전화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런 집에 살고 있는 나는 정작 왜인지 모르게 허전했다. 전망이 좋아서, 한강과 서울숲이 가까워서, 교통이 좋아서, 회사가 가까워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3년 반 전엔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온 이곳에서, 나는 무언가 비어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