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부터 시도한 진화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 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떤 사람인지를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시도해보고 경험해보니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뚜렷이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려본 이후 처음으로 붓을 잡아보고 그림을 그려보았다.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그림을 그렸던 것과는 달랐다. 내가 느끼는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색들을 통해 표현하는 일은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평소엔 다녀보지 않았던 전시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작가들의 작품보다는 작가들의 삶에 관심이 가고 궁금했다. 어떤 시절에 어떤 영감을 받았길래 이 작품을 남기게 되었는지. 그러다 보니 작품보다는 작가들의 삶과 스토리를 기반으로 도슨트를 하는 정우철 도슨트가 하는 전시들을 경험했다. 모든 작품에는 배경이 있었고 환경이 있었고 그것들이 만든 작가가 있었다. 어느 작가 하나 같은 스토리를 가진 작가가 없었다. 각자의 삶을 통해 얻은 영감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그 다양함을 나는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전시에 관심이 가다 보니 전시를 직접 열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멈추지 않고 실행해보자는 생각에 작가 3분을 모시고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전시를 열었다. 실제 작품 활동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었다.
이 경험들을 통해 그림이란 나의 스토리를 담고 나를 표현하는데 좋은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직접 경험해보고 느낀 미술이라는 키워드는 내 삶에 비중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술처럼 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장르들을 하나하나 알아갔다.
회사를 매각하고 2019년에는 5년간 타 오던 차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에 그때 신형이 출시된다던 지바겐을 예약했다. 예약 후에도 받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좋은 차종이었다. 하지만 2020년 계속되는 진화에 문득 나는 왜 그 차를 선택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굳이 이유를 꼽아보자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차종이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차종인지를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때 친한 친구가 본인의 SUV를 타고 오프로드와 차박을 경험해보자고 했고 그 경험에 매료되어 나는 지바겐 예약을 취소하고 2016년에 단종된 중고 오프로드용 SUV를 구입했다. 그 중고 SUV를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나만의 차로 튜닝하여 소장하게 됐다. 그렇게 이 차는 오롯이 나를 표현하는 나만의 차가 되었다.
또한 나는 늘 같은 스타일을 고수해왔던 헤어스타일과 옷 스타일에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일지에 대해서. 늘 같은 구두에 코트에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왔던 나는 확률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호감을 받을 수 있는 모습이었고 사실 그것을 의도했었다. 적은 나이에 사업을 하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외모를 유지하려 했었다. 하지만 2020년에 본 나는 나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를 길러보기 시작했고 옷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들을 시도해보게 되었다. 인생 처음으로 태닝도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가 표현하는 내가 겉으로도 표현이 되어질 때쯤 주변에서도 좋은 피드백들을 많이 주었다. 물론 우리 엄마는 여전히 적응을 못하는 단정하지 못한 겉모습이 되었지만 나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은 바뀐 나의 겉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나답다고 느낀다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내고. 나를 가장 나답게 표현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행복했다. 그런 과정에서 알게 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나에게 이렇게 본인 인생의 주제를 잘 알고 잘 표현하는 사람은 드물고 심지어는 주변의 아티스트들보다도 깊다며 좋은 피드백들을 주었다. 점차 나만의 색이 짙어지자 주변에서도 점점 아티스트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일들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나는 평생 아트에 대해 관심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느껴져 불편했다. 나를 표현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키워드를 찾고 싶었다. 아티스트가 아니라.
나만의 키워드라면.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일 것이란 생각에 어린 시절부터 다시 떠올려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반에서 회장을 하는 걸 좋아했고 나서기를 좋아했다. 친구들의 부탁으로 결혼식 사회나 축가를 하는 기회들도 내겐 즐거운 일들이었다. 친구들이 모이면 늘 그 중심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친구들이 웃는 모습에 행복해했다. 나에겐 사람들이 함께하는 무대가 필요했고 그 앞에서 나를 표현하는 일을 평생 즐거워해 왔었다. 그러다 떠오른 나의 키워드는 ‘쇼’였다. ‘아트’가 아닌 ‘쇼, show’. 평생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어려운 예술보단, 서커스처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쇼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늘 내 꿈이라고 말하고 다닌 K리그 단장의 꿈 역시 또 하나의 show였다. 일관되게 난 show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고, show라는 키워드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그런 쇼를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 쇼맨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 추천받아, 코로나로 재개봉한 ‘위대한 쇼맨’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가 꿈꾸는 삶과 닮아있었고 내 인생의 키워드를 그저 그런 쇼맨이 아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쇼맨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쇼를 기획하는 쇼맨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색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졌고 사명감이 생겼다. 그 쇼가 브랜드일 수도, 음악일 수도, 미술일 수도, 여행일 수도, 축구구단일 수도 있지만 그 경계를 두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만의 색을 찾을 수 있는 쇼들을 죽을 때까지 기획하며 살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