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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Jan 02. 2021

내가 진화론자가 된 이유

나는 33살에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다.


경제적 독립은 평생을 통해서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다. 내가 세운 경제적 독립의 기준은 높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에 정해두었다. 크지 않지만 내 소유의 집, 가지고 싶은 차 하나, 그리고 남은 유동자금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자는 게 그것이었다.

스물다섯에 창업한 회사는 스물아홉에 매각했고, 서른 살에 창업한 두 번째 회사는 서른셋에 매각했다. 두 번의 매각으로 나는 내가 세웠던 기준을 넘어선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다.


얼떨떨했지만 꿈꿔왔던 목표를 이뤘기에 계획했던 대로 인생을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즐겨보기로 했다. 최소한으로만 일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엔 자유롭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걸 먹고 마셨다. 꿈에 그렸던 인생을 이렇게 즐길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매각을 하고 내 인생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었던 2019년은, 다시 기억해보자면 가장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1년이었다. 인생의 목표가 경제적 독립이었던 사람에게 그 꿈은 이뤄졌고 나에겐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목표가 너무 낮았던 탓이었을까? 경제적 독립이라는 기준을 더 높여서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더 나은 삶의 질을 갖도록 해볼까? 여러 생각들은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래 보고 싶은 용기도 에너지도 없었다. 이미 이룬 것들마저 잃고 싶지 않았고 그냥 지금 가진 것들로 칠십, 팔십이 될 때까지 잃지 않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제주도에 가서 펜션 하나를 하면서 오는 친구들, 게스트들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래. 인생이란 게 뭐 있나. 어차피 죽으면 다 잊혀지는 것. 나 행복한 거 하면서 살자고 생각했다. 문제라면 사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당장 하루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 즐거웠지만, 집에 돌아와 내일을, 오 년 뒤를, 십 년 뒤를 떠올리면 그저 오늘과 같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우울했다. 더 나아지는 게 없는 삶. 기대가 되지 않는 내일.


생각해보니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경제적 독립이라는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일차원적인 목표였던 간에. 나는 평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왔었다.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 네트워킹을 하고, 사업을 하고. 그 모든 것들이 경제적 독립이라는 꿈을 위해서였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며 진화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준비 없이 경제적 독립을 마주했고. 그렇게 나는 삼십사 년을 살면서 내 인생에 처음으로 퇴화를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이유는 그 퇴화 때문이었다.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어제보다 더 나아짐으로써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적 보상을 받게 되고, 그것이 인류가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세팅되어 있음을 인정했다. 그렇게 나는 진화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경계를 두지 않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2020년 첫 인스타 게시글 ‘진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시도와 경험들을 통해 하루하루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고, 어느덧 내일을, 오 년 뒤를, 십 년 뒤를 떠올려보면 너무나도 기대가 되는 미래들이 선명히 그려졌다.

계속해서 이렇게 진화하며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와 도전들은 늘 실패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안전하고 소박한 삶보단 위험하지만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그 위험과 도전 안에서 성공과 행복만 가득하겠냐만은 기꺼이 용기를 내고 싶어 졌다. 그때 이 격언을 만났고 내 삶의 모토 중 하나가 되었다


Courage is not the absence of fear, but rather the judgment that something else is more important than fear.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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