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서의 3 달
회사를 매각한 것이 18년 말이었다.
경제적 자유와 함께 찾아온 것은 이젠 그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아 작아져버린 나의 꿈이었다. 소박해진 나의 꿈은 내가 살아갈 이유를 점점 지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무기력함을 느꼈던 것이 19년이었다.
거창한 꿈을 다시 세워보는 것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잘하던 것이 아닌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겸손함을 배우고 이를 통한 진화였다. 충실하게 그 진화만을 따랐던 것이 20년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가슴이 설레는 꿈이 생겼고 그 방향에 맞는 태도를 지니기 위해 내가 사는 환경을 바꾼 것이 올해 4월이었다.
행복하기 위해선 성공의 기준이 나로부터 세워져야 함을 깨달았고,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오롯이 나에 대한 질문과 탐구에만 시간을 쓰기 시작한 지 3달이 지났다.
이사한 판교 집의 거실에는 예전처럼 소파를 두지 않고 큰 책상을 두었다. 지금 시점에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집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거실에 있었어야 했다.
현재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탐구였고, 탐구에 가장 적합한 구조로 거실을 배치했다. 그리고 책상 뒤 거실 벽면에는 탐구를 하며 찾아낸 나에 대한 단서들을 하나둘씩 오려 붙이기 시작했다.
나를 탐구하는 데 있어 다른 사람과의 대화보단 나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했기에 혼자 차를 운전해서 가는 부산 여행을 계획했다. 5시간을 넘게 운전해 부산을 가서 바다를 보고 다음날 또 운전해 돌아오는 길에, 충주의 수주팔봉에 들렀다 다시 판교로 돌아온 꽉 채운 2일의 나 홀로 여행을 통해 나를 알아가기 위한 단서들을 더 모을 수 있었다.
탐구의 또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목표가 경제적인 성공이 되기 이전의 순수했던 시절의 나를 찾다 보면 그 안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운동장을 보고 교실을 보니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어있었지만 다행히 내 기억과 그대로인 공간들도 남아있었다. 그 공간들이 주는 힘을 통해, 초등학생의 나는, 중학생의 나는, 고등학생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친구였는지, 그 당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천천히 그리고 선명히 떠올려보았다.
그렇게 찾은 단서들을 이리저리 맞춰보고 사유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 조금씩 다른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기준들이 세워지고 있다. 건강해지고 있음이 느껴지고 매일매일 단단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내일이 기대가 되고 내년이 기대가 된다. 나로부터 나온 기준을 통해 방향을 잡으니 이제는 더 이상 조급하지 않다. 아직도 공부할 것이 많으나, 공부할 것이 많음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그들과 나누는 대화도 즐겁다. 나만의 것이 만들어지니, 나만의 것을 가진 다른 필드의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는 대화에서도 희열을 느낀다.
오직 나에게만 적용될, 내가 행복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는 데 과거의 나는 어떤 노력들을 했었는지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