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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Jan 02. 2022

자신을 죽이는 것이 황홀한 삶의 시작

2020년을 마무리할 때쯤 나는 위대해지지 않을 바에는 대충 살고 말 것이다 를 브런치에 남기고, 다부진 마음으로 2021년을 맞이했다. 2020년 일 년 내내 진화를 외치며 나다워지는 것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매각을 한 이후로 남은 인생을 안전하게만 살고 싶었던 내가 정반대로 위험하더라도 위대하게 살고 싶은 사이드에 서서 2021년을 맞을 수 있었다.


2021년 4월에는 판교로 이사를 했고, 8월에는 SUMSEI 브랜드를 리뉴얼하며 섬세이 테라리움을 오픈했다. 나를 찾으려는 노력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했던 일 년이었다. 하지만 2020년의 진화를 통한 성장에 비하면 그 속도가 더뎌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삶은 의미 없는 경쟁에서 나를 구했지만, 반면 그렇게 생겨난 안도감이 나의 진화의 속도를 더디게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진화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음이 정확하다.


이는 어떠한 나의 잘못된 삶에 대한 태도로부터 시작됐음을 알게 됐다.

중고등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공부도 효율적으로 하는 게 현명하다 생각했다.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만을 고민했다. 그 최대 효율 구간을 지나,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의 비용은 2배, 3배로 늘어나는데, 내가 얻을 수 있는 결과값은 1/2, 1/3도 안되기에 늘 그 지점에서 멈추었다.


이건 시험성적을 위한 공부를 할 때만이 아니게 된 것 같다. 사업을 할 때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나는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더 순도 높은 결과를 얻는 것보다는 투자 대비 가장 효율이 높은 지점에서 멈추었다. 하지만 2021년을 마무리하며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그 지점 이후로부터 얻어지는 것들이 진짜라는 것이었다. 이 또한 나 스스로가 깨달을 수 없었지만, 그 지점 이후로부터 얻어지는 것들이 진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현명한 사람들이 다행히 내 곁에 있었다. 몇 년 전부터 그들이 그 순도 높은 진짜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고, 심지어는 그들은 나와 다른 것을 추구한다고 나를 속이며 눈을 똑바로 뜨고 그들의 피, 땀, 눈물을 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얻어내는 결과값들까지는 여러 가지 얕은수들과 운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 이상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흘려야 할 피, 땀, 눈물이 필요했다. 살면서 어떻게 하면 피, 땀, 눈물을 적게 흘려야 할까만 고민했던 나는 이미 잘못된 습관이 몸에 가득 베여 있었다. 시험 성적이나 사업 성공의 크기에 있어, 그 잘못된 습관 때문에 더 진짜의 결과들을 그간 마주하지 못했던 것들은 아쉽지만 그렇게 슬프진 않았다. 정말 나를 슬프게 한 건, 그 태도 때문에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마저도 더 진짜이거나 깊을 수가 없었던 것에 있었다. 내가 최선이라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이 최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이상은 있었다. 정말 몰랐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며 살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히 알게 된 건 내가 알던 최선을 넘어섰을 때에만 진짜가 있고, 그 진짜를 얻고 싶다면 필히 피, 땀,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2020년 마지막 날 내가 외쳤던 위대함은 이제와 알고보니, 실제 위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 솔직해야만 그 옳은 방향으로 몸을 돌려세울 수 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나는 얕았고 요행을 바랐다. 어쩌다 보면 우연히 그 위대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를 내심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위대함에는, 아니 누구나 바라는 위대함에는 얕음과 요행은 공존하지 않음을 받아들였다. 너무 오랜 시간을 잘못된 태도로 살아온 탓에 이제는 너무 늦어버려 이 버릇들이 고쳐지지 않을까, 그래서 위대함에 다다르지 못하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설령 그 위대함에 다다르지 못한다 한들, 정직하게 흘리는 피, 땀,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가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살다보면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는 나은 내가 되어있을거란 확신이 있으니.


최진석 철학가는 인터뷰 중, "자신을 죽이는 것이 황홀한 삶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외부의 것들로 채워진 낡은 자기와 결별하지 않고는 절대 새롭고 진실한 자기를 만날 수 없다고 했다.


2022년을 지난 시절의 나를 죽이는 시작으로 생각하며 겸허히 맞이하려 한다. 거창하게 위대함을 노래할 때가 아니라 작은 걸음 하나를 내딛을 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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