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끼고 있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에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보니, 이전에 내 생각을 남긴 마지막 글이 올해 첫날이더라.
어느덧 쌀쌀해진 11월이 되어서야 생각을 글로 정리하여 남길 수 있다는 게, 참 오래도 걸렸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은게 생겼다는게 기특한 마음도 든다. 평생을 가지고 온 가치관을 송두리 째 바꾼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그렇게 받아들인 것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글로 남겨보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좋다.
최소한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장 달콤한 케이크를 취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돈과 시간만 많으면 자유롭고 행복할 것이라는.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온 나 자신을 부정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누가 보기에도 쉽고 편해 보이는 그 세상이 없다는 걸 마음 깊숙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열 달이 걸렸다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쉽고 편한 것만 찾다 보니. 어느새 얕아져 있는 내가 보였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다시 전하는 게 쉽고 편했다. 적당한 결과를 얻기에도 빠른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점점 더 쉽고 편한 길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내려진 쉽고 편한 결정들의 결과들은 나약하고 취약했다. 이 모든 게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는 걸 나 자신이 알았기에 불안했고 자유롭지 않았다.
반면 나를 감동시키고. 내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느끼기에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들의 삶은 예외 없이 얕지 않았다.
그들의 삶을 반추해보니 쉬우면서 위대해지는 길은 없어 보였고, 편하면서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삶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들은 구도자 같았고, 수행자에 가까웠다.
그런 삶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언어와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줄 알았다. 다른 누구의 언어와 방식이 아닌.
나도 내 언어로. 내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나는 위대해지고 싶었고, 자유롭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다움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 달을 채운 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 보내는 수 없이도 많은 질문과 답의 연속이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해 보기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보기도. 책을 읽어보기도. 여행을 여럿이서 가보기도. 또 혼자 가보기도. 행사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해 보기도. 전시를 찾아가 작가들을 살피기도. 어른다운 어른을 찾아보기도. 그들의 삶을 추적해보기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보기도. 낯선 환경에 나를 두어보기도.
많은 시도들 속에서 끈질기게 내게 물었다. 무엇이 좋은지. 또는 좋지 않은지. 무엇이 옳은지. 또는 옳지 않은지. 무엇이 나를 깊게 만드는지. 또는 무엇이 나를 얕게 만드는지. 무엇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무엇이 나를 무르게 만드는지를. 그렇게 게으르지 않게 열 달을 보내려 노력했다.
나라는 존재는 참 비밀스러웠다. 가볍게 물어서는 쉽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대답해 주지도 않았다. 나 자신에게 묻고 답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너무나도 몰랐다. 나는 내가 그동안 생각해서 그 답을 주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생각하지 않았음에 더 가까웠다. 이미 외부에 있는 가장 ‘정답’ 스러운 답으로 나에게 답해주는 건 여전히 쉬웠지만, 그때마다 지우고 다시 생각해서 답을 주려했다.
자연스럽게 하루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youtube를 보는 시간보다 책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보다 산책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생각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그랬듯,
나도 이제 홀로 있을 수 있고 독서와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