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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Dec 31. 2022

삼년불비불명 三年不飛不鳴

새가 삼 년 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오늘은 2022년의 마지막 날이다. 2020년부터 진화進化 를 외치며 지내온 삼 년 차 해였다.

첫 일 년을 보내고 20년의 마지막 날에 '위대해지지 않을 바에는 대충 살고 말 것이다' 라는 글을 남기며, 패기 넘치는 인생의 출사표를 던졌었다. 그렇게 일 년을 더 보낸 후에는, 살면서 잘못된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 온 나를 온전히 버려내야 내가 원하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 황홀한 삶의 시작' 이라는 글을 남겼다.


올해도 게으르지 않았기에 많은 것을 시도했고 경험했고 실패했고 깨달았다. 나답게 살아내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 를 수 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답한 일 년이었다. 본능적으로 나답게 살아야 함이 옳다는 것을 감각했지만 명확히 나 자신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끈질겼던 나의 문답은 나를 최진석 교수님 앞에 데려다 두었다. 21년 1월에 '이제는 한 번이라도 진짜로 살아보고 싶다', 글 하나로 나의 문답을 가속시켰던 그 어른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마침 도약의 기초를 닦을 목적으로 6개월 정도를 가볍게 탕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새말새몸짓_기본 학교'로 모으신다는 소식에, 나는 어른이 계시는 함평으로 떠났다. 이때가 10월 말이었다.


전라남도 함평은 교통이 쉽게 닿는 곳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는 기차를 두 번,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4시간 정도를 보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해 직접 만난 그 어른의 안광眼光 과 수준 은 또 한 번 내가 믿어온 많은 것들을 흔들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를 보낸 오늘의 나는,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를 조금 더 명확히 나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욕망을 들여다보니 해야 하는, 그리고 필요한 일들도 자연스레 드러났다.


나는 '존재감'이 중요한 사람이다. 무대 위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큰 사람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 욕망을 놓치지 않으려 투쟁해 왔다는 걸 알았다.

어린 나에게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싸움을 잘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랬기에 어떤 싸움이 걸려와도 피하지 않고 맞섰다. 학교에서 존재감. 내 포지션을 잃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니 '존재감'은 싸움이 아닌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옮겨졌다. 나는 충실히 공부했다. 내 존재감. 내 포지션을 위해.

대학에 가니 이제는 공부가 아니라 돈이 많아야 한다는 걸 감지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5살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크고 작은 엑싯exit 을 통해 나는 내 존재감과 포지션을 지켜냈다.


그렇게 무대에서의 내 위치와 존재감을 즐기고 있을 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주변에는 금전적으로는 큰 성공을 이뤄냈지만 존재감이 없는,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목격했다. 내가 알던 대로라면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존재감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불안했다. 다음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함평에서 어른을 만나며 그다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60살이 넘은 남자 어른을 만나기 위해 나는 그 먼 길을 내달렸고, 6개월의 주말을 기꺼이 반납했다. 그곳엔 나 말고도 두 번의 에세이와 한 번의 면접을 통과해 모인 15명의 20대, 30대 학생들이 있었다. 완벽하게 그분은 내가 원했던 존재감과 영향력을 무대 위에서 내뿜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이곳까지 이끌었는가. '높은 수준'이었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배울 것이 있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존경할 수 있는, 업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그런 '수준'을 갖추고 계셨다.  


왜 나는 그다음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가.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수준의 차이라는 것이 없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보는 것과 유튜브를 보는 것이 어떻게 취향의 차이인가. 매일같이 나를 수련하며 절제하여 사는 것과 술에 쩌들어 사는 것이 어떻게 가치관의 차이인가.


왜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못 생긴. 그리고 수준이 낮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싫었다. 내가 번 돈으로는 수준을 살 수 없었다. 피, 땀, 눈물이 없이도 무대 위에 설 수 있고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모두가 입을 모아 '수준이 높다'라고 말하는 분들을 공부하고 또 찾아가 만나 뵙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깊었다.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고 수련에 게으르지 않았다. 책을 읽고 사색하기 위해 고독의 시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목에 힘줄을 세우지 않아도, 눈에 핏발을 드러내지 않아도 크고 단단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 주위에 모였고, 하나 같이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 했다.  


나의 존재감. 나의 무대를 위해 내가 갖춰야 할 다음은 '높은 수준'이었다. 그 수준을 갖춘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투쟁하여 쟁취했던 싸움, 공부, 돈 정도의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차원이 다른 각오와 태도로 무장해야 했고, 이를 위한 수련들이 내 삶에 녹아들 때까지 절대적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기본 학교 수업 중 나왔던 교수님의 말씀을 새기며 2023년을 맞이하기로 나는 정했다.


삼년불비불명 三年不飛不鳴

:「새가 삼 년 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큰 일을 하기 위(爲)하여 침착(沈着)하게 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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