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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May 15. 2023

내가 부여한 나의 이름, 혁이창

모험을 떠나기 위한 조건

누구나 그렇듯 태어나보니 내 이름은 정해져 있었다

'이창혁'이란 이름은 뭐 엄청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은 그런 이름이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종혁' '은혜' '민수'와 같이 종종 이름이 겹치는 친구들을 만나 봤지만 '창혁' 이는 마주쳐본 적이 없었다. 이름이란 게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처럼 바꿔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별다른 생각 없이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군대를 제대하고 보스턴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첫 수업에서 만난 백인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브라질 사람, 프랑스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 학생들의 인종은 모두 달랐으나 당연한 듯 다들 영어 이름이 하나씩 있었다. 난 '창혁'이라고 말했다.

'총혁' '충혁' '차앙헉' '차앙효크' 등으로 그들은 내 이름을 불러보기 시작했다. 굉장히 어렵다는 듯 입을 오므렸다 폈다가를 몇 번을 시도했지만 누구도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영어 이름은 없냐고 물었다. 없다고 말하니 옆 자리 친구가 'Jay'가 어떠냐고 했다. 그래. 뭐 어때. 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니 다들 '헤이 제이' '와썹 제이'를 연신 외쳐댔다.


6개월 정도의 어학연수를 보스턴에서 마치고 나는 미시간으로 넘어가 편입했다. 그곳에서도 내 이름은 여전히 'Jay'였다. 하루는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백인 친구 Nathan 은 내 이름이 왜 'Jay' 냐고 물었다. 어학연수 때 그냥 만든 이름이라고 했다. 한국 이름이 '창혁'이라고 알려주자 Nathan 역시 '차앙헉' '창효크'를 몇 번 시도해 보더니 그냥 'Chuck'이 어떠냐고 했다. '창혁'과 발음이 가장 비슷한 미국 이름인데 어떠냐며. 이미 어학연수 때부터 대학을 다니며 미국에서 수도 없이 마주친 'Jay' 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부터 내 이름은 'Chuck'이 되었다.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창혁이란 이름만큼 척 이란 이름으로 많이 불렸다. 미시간에서 같이 대학을 나온 친구들은 주로 '척' 또는 '척형'으로 나를 불렀다. '창혁아' '창혁이형' 보단 담백하니, 부르기에도 듣기에도 나쁘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사실 나를 '창혁'이라 부르든. '척'이라 부르든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창혁' 이든, 'Jay' 든, 'Chuck' 이든 내가 원했던 이름이라기 보단, 다른 사람들이 원해서 만들어진 이름이었으니.   


2020년부터 시작한 나에 대한 탐구를 통해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 하는구나 를 어렴풋이 눈치챌 때쯤이었다. 하루는 노래를 듣다가 우연히 '장필순'이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는데, 뿜어져 나오는 낯섦과 아우라가 이름에서부터 느껴졌다. 나도 그런 낯섦과 아우라를 품은 이름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평생을 너무나도 익숙해서 불편함을 인지해 본 적도 없었던 내 이름이 처음으로 불편했다. 나는 그 불편함을 머금은 채 탐구를 지속했다.


친구들과 모인 술자리에서 나는 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장필순 장필순!!! 나도 이런 이름을 가지고 싶다며. '문'예진 이라는 인플루언서는 라스트네임을 끝으로 붙이니 예진'문' 이 되었다고!!!! 그런데 나는 라스트네임을 뒤로 놓아봐도 '창혁이'가 되어버린다며.. 씁쓸한 내 이름의 구성을 한탄하며 와인을 들이켰다.


그때 한 친구가, 그럼 '혁이창' 은? 이라고 외쳤는데 그 순간 나는 이 이름이 내가 가지고 싶었던 그 낯섦과 아우라를 품은 그것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세계 유일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니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해서가 아닌 내가 원해서 갖게 된 나의 첫 이름이었다. 이제는 내 삶을 그저 주어진 대로 살지 않겠다는 나의 생각이 만들어 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의 전리품으로 내가 부여한 나의 이름을 내가 챙겼다.

'혁이창', 나는 이 이름을 보고, 듣고, 쓸 때마다 '나는 부여하며 사는 존재'임을 잊지 않기로 했다.  


고전 돈키호테 의 주인공 '알론소 키하노'는 모험을 떠나기 전 자신의 말 이름을 '로시난테'라고 정하는데 꼬박 나흘을 보냈다. 그 후 자신의 이름을 '라만차의 돈키호테'로 정하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떠날 그 모험의 이유를 자기 자신이 정했다. 그 모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자기 삶의 소명도 본인이 정했다. 모든 것을 부여한 후, 그는 모험을 떠났다.


2021년 초, 나는 나의 이름을 부여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삶의 소명도 내 모험의 이유도 부여했다.

나는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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