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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Sep 06. 2017

정말 이만한 게 다행이에요

영화 ‘더 테이블’을 보고 왔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여운에 오래 젖을 수 있는, 그렇지만 너무 차갑지는 않은 중단편 소설을 읽은 듯한 기분이에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기분 좋은 나른함으로 만들어 낸 것이 감독의 역량인지 배우들의 연기력인지 모르겠어요. 아마 둘 다겠지요.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조금 지쳐있었어요. 일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거든요. 아, 마음같이 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네요. 오는 9월부터 맡기로 한 일이 있었어요. 나름의 보수가 있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어요. 쓰고 싶지 않은 종류의 글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지요. 별 기대감 없이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어그러지고 나니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지금은 황정은의 ‘웃는 남자’를 읽어요. 저는 황정은의 소설을 ‘백의 그림자’부터 읽었어요. 지금도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이지요. 얼음을 손에 쥔 듯 시린 기분이 드는, 그렇지만 이내 곧 얼음이 다 녹을 거란 확신이 드는, 그런 희망으로 수렴하는 소설이에요. 이제야 고백하지만 다른 소설들은 그렇지가 못하네요. 혼자 남겨진 세상에서 어느 누가 희망을 말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참 하찮은 존재라고, 한 번의 충돌에도 내동댕이쳐 질 수 있는 존재라고 주인공 d는 되뇌죠. 맞는 말일지도 몰라요. 지난 하루에도 얼마나 쉽게 마음이 상할 수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아무리 단단한 문장들을 쌓아둬도 볼링핀처럼 힘차게 고꾸라지는 것이...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친구가 짙은의 ‘괜찮아’를 추천해줬어요. 결코 희망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 노래를 듣는데 왠지 모를 기운이 났어요. 이것도 맞는 말 같았거든요. 우리가 뭘 알겠어요. 모든 걸 아는 체 겪어본 체 하면 다시 튀어오를 탄성 같은 건 없는 거겠죠. 가끔 아스팔트 바닥에 얼굴을 비벼대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도 때로는 체념 덕분이니까요.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때가 있지만. 가끔은 그런 하루도 괜찮은 거겠죠. 
     
그래서 친구에게 답례로 보내는 곡은 프롬의 ‘이만한 게 다행’이랍니다. 주위에 노래를 골라줄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이만한 게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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