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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Nov 19. 2017

내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으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면접 불참기

악수 끝에 장고. 눈으로 한번 읽는 순간 다들 눈치 챘겠지만 실은 '장고 끝에 악수' 라는 표현이 맞다. 몇 번이고 고쳐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악수 끝에 장고라는 말이 입에 더 착 달라붙는다. 어쩌면 나에게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악수 끝에 장고. 딱 지금의 내 모습이다.

     

보기로 했던 면접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19일, 그러니까 면접 당일 새벽에 내린 결정이다. 어쩔 수 없이 아침에서야 담당자에게 불참 의사를 밝힐 수 있을 테니 일종의 ‘노쇼’인 셈이지만 면접 일정을 전혀 예상치 못하게 알려온 쪽도 잘못은 있다. 미처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 불쑥 나타난 차량을 비껴가려다 생긴 파손은 쌍방 과실이다. 잘잘못을 따지려는 건 아니고. 뭐, 그렇다는 거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내가 면접도 걸러서 갈만큼 배가 부른 사람은 아니다. 벌써부터 왜 가지 않았느냐고 아까워하거나 혀를 찰 사람들의 얼굴이 보여서 하는 말이다.(물론 나의 망상이다.) 이제 나도 사학년이고 한 번쯤 제대로 된 트랙에서 뛰어봤으면 하는 욕심은 진작부터 가지고 있다. 아니, 그전에 요즘 자신감이 바닥을 친다. 칭찬을 살 수 있으면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니 더더욱 가야만 하는 자리다. 면접 장소는 고층 빌딩에, 번듯한 상호명에, 면접자에 붙은 수식어마저 화려하다. 떨어지더라도 참여만으로 남는 게 있을만한 기회다. 그렇지만 가지 않겠다.    


이미 한번 고배를 마셨으니 그 다음이라고 다르겠냐는 패배감이 없진 않다. 붙을 자신이 없는 것도 맞다. 나는 아마 떨어질 거다. 그래. 근데 모르는 거잖아. 어찌됐건 면접 자리에 앉을 기회는 주어졌고 그 순간만 잘 넘기면 되는데. 네 지원서랑 포트폴리오 어디에 밑줄이 그어져있고 어떤 코멘트가 달려 있을진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건데. 한번 가보는 게 어때. 에이, 가보자.      


악수 끝에 장고, 라고 나는 고민을 하는데 에너지를 엄청나게 쏟아 붓는 체질이다. 지난 며칠 간 몸이 너무 아팠다. 자고 일어나면 몸 어딘가 으깨진 듯이 아팠다. 누군가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고 엉뚱한 제스쳐를 취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돈이 관련된 문제에서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왜 그랬을까. 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해야 했던 걸까. 지나고서야 알았다. 나는 알고 있었던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면접 순간에 내가 할 말이 없다. 무슨 미디어를 만들 건가요?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거죠? 잘.. 모르겠어요. 속으로 묻고 물어도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비전의 부재다. 내 안에 어떤 청사진이나 지도가 없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20대 초반과 군 복무 시절 읽었던 책은 이제 바닥났고 기획력이나 제작 능력은 아직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수준이다. 두 세 번의 학기를 거치면서 쥐어짜느라 말라비틀어진 치약처럼 되어 버렸다. 내공도 없고 인사이트도 없는데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 답이 없는데 답을 지어내는 건 임기응변이 아니라 거짓이 아닐까.     


백 번을 양보해 설사 합격한다 하더라도 내가 행복할 것 같지가 않다. 그 동안 잡았던 약속들과 일정들을 모두 파기해가면서까지 내 몸을 서울로 이끌고 가야 할 만큼, 적어도 해당 기회가 약속한 조건들이 이제는 나에게 매력적이지가 않다. 밖으로 쏟아내기 보단 안으로 쌓아야 할 때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딱 한 번의 불합격 판정을 받고 밖으로 갖은 위악을 부렸다. 판정은 번복될 수 있지만 그 순간에 내 스스로 확인했던 성숙도는 번복될 수 없다. 마치 비에 절어버린 사과 같았던 내 성숙함 말이다. 이제 망했다고, 1년 농사를 망쳤다고. 하지만 실은 내가 나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나를 잃어버리는 게 진짜 올 한 해를 버리는 일 아닐까. 합격 통지 한번 못 받았다고 망했다고 할 만큼 무의미한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함께 공부하고 발로 뛰고 땀 흘리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떠도 웃을 수 있는 밤이 있었고 뙤약볕에서 얼굴이 타는 줄도 모르게 외치던 순간이 있었는데. 하루를 마치고 저녁이 되면 옹기종기 모여 맥주캔 앞에서 각자의 고민들을 환하게 태울 때가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촛불 같던 얼굴들. 지금은 그 순간들이 무엇보다 값지다는 걸 안다.     


만약 내가 내년에도 같은 자리가 탐난다면 그땐 내가 내 입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 어쩌면 그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땐 오늘의 결정을 후회할까. 오늘의 내가 미울까. 그렇대도 어쩔 수 없다. 무엇도 말할 수 없는 자리에 가야 하는 건 오늘의 나인걸. 어느 소설가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적었지만 나는 반대다.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짓밟을 권리는 아무데도 없다. 사람을 갉아먹는 일은 스스로에게도 용납될 수 없다. 나는 그리 믿는다. 다만, 오늘의 결정이 있기까지 수차례 조언과 격려를 해준 사람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부디 용서해주길. 이건 나의 유약함 때문이지 당신들의 격려가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 잘 전달되었을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서 가지 않겠다.      


너무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이미 면접에 적합한 컨디션을 유지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고 이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목이고 어깨고 온 몸에서 힘이 스멀스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침대에 누우면 녹아내릴 것 같다. 대신에 배 한가운데에 뭔지 모를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의 무언가가 모여드는 것 같다. 이를테면 안도감 같은 것. 내가 스스로를 놓치지 않고 결정할 수 있었다는. 추운 겨울 같은 세상에서 번듯한 이름보다 지켜내야 할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면접을 약속한 시간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영화를 두 편 정도 볼 테고 끝이 보이는 책을 두 권, 운이 좋으면 세 권 정도 읽을 수 있을 테다. 한 편 정도의 글을 쓰거나 쓰지 못할 수도 있겠다. 아 물론 과제를 해야지. 그래도 나는 행복할 거다.      


오늘 밤에는 내가 그리던 그림 같은 꿈을 꿀지도 모르겠다. 악수 끝에 장고, 아니 장고 끝에 악수.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그런 그림을 꿈꾼다. 내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는 꿈을 꾼다. 오늘 밤에는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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