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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Oct 30. 2017

겨울에는 고드름 같은 글이

글쓰기에 대한 작은 생각들

똑똑. 글쓰기에 대한 글을 두 편 가지고 왔습니다. 한 편은 무더운 여름으로부터 건너왔구요. 다른 한 편은 막 코끝이 시려지기 시작한 가을바람에 날려왔습니다. 여름엔 창밖으로 비가 왔는데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지네요,라고 쓰면 좋겠지만 가을밤에 쏟아지는 것은 시험이 달아준 졸음입니다.


뭐, 그래도 좋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무언가를 쓸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덕분입니다. 저는 아마 내일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을 겁니다. 겨울에는 고드름 같은 글이 달리려나요.



<긁적긁적>


글을 쓴다는 건 무언가를 긁는 행위입니다. 또각또각, 사각사각, 사그락 사그락, 끼릭끼릭 모두 종이에 무언가를 대고 쓸 때 나는 소리입니다.


그런 하루가 있습니다. 가려워서 도저히 긁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 그때 했어야 했지만 뒤늦게 떠올린 말들.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속으로 겨우 삭혔던 말들. 실은 그게 아니었던 말들. 이제는 전할 수 없는 말들. 그런 것들이 우리를 가렵게 만듭니다.


긁는 것도 기술이라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엉뚱한 곳을 긁을 때도 있고 한숨만 쉬다가 뚜껑 혹은 노트북을 덮어야 하는 날도 있지요. 그러다가 제대로 긁는 날이면. 안 긁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긁어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무섭습니다.


물론 너무 심하게 긁으면 생채기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마주치는 얼굴을 보기가 조금 부끄러울 때도 있지요. 그래도 긁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흉터는 때로 기록이니까요.


머리를 긁적이고 종이를 긁적이고. 조금 바보 같지요. 그래도 이 순전한 바보들에게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겁니다. 마침표를 찍는 순간, 세상에는 어떤 문장이 생겨나고 그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걸요. 본인도, 세상도 그리고 그걸 읽은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또다시. 또각또각.(17.10.29)



<자판의 소리, 노크의 자리>


저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저는 글이 잘 써지면 신이 나서,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화가 나서 자판을 아주 힘차게 두드린다더군요. 그래서 따닥따닥하고서 자판을 치는 소리가 멀리서도 아주 잘 들린다고 합니다.     


덕분에 노트북 자판이 일 년 만에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른 수리를 맡겨야 할 텐데요. 그래도 블루투스 키보드를 빌려준 친구 덕에 이렇게 종종걸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이 간격이 조금 좁다 싶었지만 적응하니 금방이네요. 아주 좋습니다. 빌려준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저는 시간이나 노력의 부족으로 글의 만듦새가 부족할 걸 알면서도 쓰는 일을 '뚝딱뚝딱 쓴다'라고 합니다. 그러다 그 불운한 예감을 이기지 못한 채 아주 절망적으로, 그렇지만 이제 와서 고칠 수도 없는 글을 쓸 때면 '뚱땅뚱땅 쓴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마저도 무언가 해낸 것만 같아 기분이 아주 조금은 좋아지지요. 말은 만들기 나름이니까요.

     

이렇게 소심하게 자판을 치고 있자니 조금 재미있는 감상이 드네요. 자판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때로는 바닥을 때리는 것처럼 후드득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창살을 비껴가는 것처럼 토도독 거리기도 하면서요.


그러고 보면 자판을 때린다고도, 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두드린다고도 할 수 있지요.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두드리는 것이 비단 자판뿐만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겠지요. 우리가 좋은 글을 읽고 나면 으레 손을 올리는 자리가 바로 노크의 자리가 아닐까요. 빗장이 물처럼 풀어져 끝내 열리고야 마는 자리일 수도 있구요.


글을 쓰는 일은 무언가를 두드리는 일이군요. 그렇다면 조금 더 세게 두드려도 좋지 않을까요. 잠긴 문을 열 수 있다면 말이죠.(1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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