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아픈가-사랑의 사회학>을 읽기 전에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제목부터 센티멘탈한 <사랑은 왜 아픈가>입니다. 감정과잉 아니냐고요? 그럼 부제를 조금 더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의 사회학.' 실은 이 책은 감정사회학이라는 분야에서 상을 받은 책입니다.
감정사회학이라는 게 뭘까요. 저도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사랑이라는 행위에 사회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살펴보는 학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책을 '고발장'이라고 표현했는데요.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나 봅니다.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사람마다 상당한 편차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사랑은 개인 대 개인이 하는 것인데 뭐하러 사회까지 들먹이느냐고요. 생소한 생각이긴 합니다. 적어도 사회학에서는 말입니다. 다른 분야라면 말이 조금 다릅니다.
'사랑을 가로막는 사회'라는 주제는 문학에선 굉장히 오래된 얘깁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주제를 담고 있지요. 그건 의식을 하고 읽든 그렇지 않고 읽든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늘 연인의 마주침과 헤어짐에 마음을 졸입니다. 현실이라고 그리 다르지는 않으니까요.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과거에 목소리 높여서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여기에 옮겨봅니다. 실은 이 모든 게 마지막 문단 때문입니다. 저 말을 듣고 싶었거든요. 글을 쓸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제가 해야겠지요. 그렇게 세상이 뒤집어지는 거 아니겠어요.
누군가 광장에 나가서 “세상이 내 사랑을 가로막고 있다!”라고 외친다면 어떨까. 그건 대중의 관심을 열렬히 바라는 어설픈 광대이거나 제 미친 사랑의 곡조를 이기지 못한 광인으로 보일 것이다.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이지 않나.
맞는 말이다. 사랑은 저들끼리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들끼리 하는 그 일에 간섭하고 참견하려는 의도들이 있다. 이건 도서관에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선 재미있어 보이는 소설을 하나 뽑아보자. 어떤가. 제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물들이 채워가는 애절한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연인 사이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의도들의 활약 덕분이다.
때로는 부모가, 때로는 국가가, 또 어떤 때는 신분이나 돈이 활약한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국 최초의 소설인 <만복사저포기>가 그렇다. 참견에는 동서양이, 고금이 없다.
무엇이 우리를 사랑으로부터 떼어놓지? 소설이 다양한 각도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눈 밝은 사람들이 인생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눈치채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다. 작가라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와 감정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걸 유의 깊게 살피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걸 테다.
앞서 말했던 거대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서로 갈라놓는 장애물은 발에 차일 정도로 많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바쁜 하루, 오늘 눈앞에 닥친 일들, 내가 곁을 챙기지 못할 만큼의, 딱 그만큼의 사소한 바쁨도 실은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적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세상에 의해 자신들의 사랑이 가로막혀 있다고 주장할 권리가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어떻게 하면 이 모진 세상을 따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궁리하는 사람들의 표식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이고 싶다. ‘세상이 내 사랑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죠?’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맞아요. 세상이 당신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군요. 그렇지만 우리는 세상을 옆으로 밀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라면 충분하지요. 사랑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모의(謀議)가 아닌가요.’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17.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