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킥보드 시승기 그리고 몇 가지 단상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김훈 작가의 여행 산문집 <자전거 여행 1,2>는 군대에서 가장 먼저 필사를 시작한 책입니다. 그만큼 의미가 깊습니다. 자전거에 관한 작가의 예찬만큼이 나요. 그래서 제가 만약 이동 수단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면 그건 자전거라는 데 아무런 의구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동 킥보드가 될 줄이야.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고 김훈 작가가 예찬하던 그 말이 저에게는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이유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출퇴근을 하고 강의를 듣고 어쭙잖게 회의에 참석하고 다시 도서관과 카페를 가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삼 만보를 가뿐히 넘겼던 어느 날, 저는 결심하고 말았습니다. 제 다리를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요. 그렇지만 다리로 버거운 길은 자전거로도 버거웠고 저는 땀방울의 가치를 외면하고 전동 킥보드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무엇 하나 사기 전이면 온 힘을 다해 고민하는 햄릿형 인간인 탓에 우습지만 ‘탈 것’은 아마 올 상반기 중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주제일 겁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움을 받았죠. 재밌게도 많은 분들이 자전거 혹은 스쿠터를 추천해주셨습니다. 아날로그 감성, 건강으로 대표되는 자전거 진영과 빠른 속도,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을 주창하는 스쿠터 진영 사이에서 저는 환영받지 못할 선택을 하고 만 겁니다. 심지어 자전거를 지지하던 한 친구는 '전동 킥보드는 공간을 살해한다'라고까지 하더군요. 제가 정확히 의도한 바였기 때문에 내심 더 흐뭇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시간을 살해하고 싶었다는 점에서 같은 듯 다른 얘기지만요.
아무튼 바퀴가 발목 너머까지 오는 제품 치고는 저렴하게 구입했습니다. 중국제라는 얘기죠. 국산 배터리에 국산 모터를 쓰면 백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그건 학생 입장에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일이었고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별문제는 없습니다. 구입을 결정하고 나자 사람의 눈을 벗어나는 곳에서 충전하지 말라는 주인아저씨의 충고가 조금 야속하긴 하지만요.(조금 많이요.) 그래서 강의실 전기를 염치없이 사용합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주고 산만큼 요즘은 어딜 가도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갑니다. 주로 강의를 들으러 가거나 가볍게 취재를 하러 갈 때 타고 가요. 그런 면에선 만족스럽습니다. 단거리를 오갈 때 확실히 편리하고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까요. 출근 전 아침에 토스트 하나 더 먹고 갈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요. 가볍게 커피 한잔하러 나서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좋습니다.(상대방의 의아함과 조소 섞인 눈빛만 감수할 수 있다면요. 그럴 땐 여유롭게 한번 웃어주면 됩니다.) 주차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자물쇠로 의지할 쇠기둥만 있다면 간편하게 주차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사회의 선의를 믿는 선에서요.
비싼 장난감인 만큼 기분전환을 위해 공연히 몰고 나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주말 아침 다이내믹하게 머리를 말리고 싶다거나 마감이 코앞인데 (“알게 뭐람”) 시간을 흥청망청 쓰고 싶을 때 타고 나가기에 적격입니다. 다만, ‘속도를 즐기고 싶을 때’라는 선택지는 조금 애매한데 최고 속도가 시속 20km 언저리를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떤 속도냐 하면 사람이 달리는 것보다는 빠른데 모빌리티라는 걸 감안할 때 '속력을 낸다'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한 정돕니다. 오르막에선 사람이 달리는 거랑 비슷할 거예요.
이건 아마 다른 기종, 다른 제품도 비슷할 겁니다. 최고속도 시속 25km가 넘는 제품을 판매하는 건 불법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속도 잠금장치를 푸는 것도(라는 말은 기본 스펙은 시속 25km를 넘을 수 있다는 얘기죠. 제 것도 수치상으론 시속 40km까지 낼 수 있다고 하네요.) 불법입니다. 다들 야무지게 잘 푸시더라고요. 저는 아직까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은요.
그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싶을 땐 어떻게 하냐고요? 저는 불법적인 방법 대신 물리적인 지형을 이용합니다.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인데 학교가 산을 끼고 있어서 산 중턱부터 1km에 달하는 직선 도로가 있기 때문이죠. 차도, 보행자도 그리 많지 않은 도로입니다. 낮에도 밤에도 요. 지금은 제가 바람을 쐬러 가는 언덕이 되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도 함께요. 킥보드를 오르막을 오를 때면 시간이 다소간 걸립니다. 그럴 때면 열심히 발을 굴러 텔레토비 언덕을 오르던 뽀는 사실 막내로서 꽤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언덕을 다 오르면, 경사가 20도 정도 되는 언덕배기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1km 도로를 막힘없이 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체중이 70kg 정도 되는 성인 남성이 직경 2.5cm 두께의 쇠막대기에 의지해서 40km의 속도로 달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 현명한 행동은 아닌데 보통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시점이면 기분이 몹시 좋지 않을 때이기 때문에 현명함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산 중턱에 서서 달리기 전, 몇 개의 과속방지턱과 손상된 아스팔트 도로를 내려다보면 갖은 생각이 떠올라요. 그동안 들어놓은 보험을 떠올리며 인생 처음으로 효자가 되려나 싶기도 하고 이대로 떠나면 착한 친구들이 누런 이면지로 유고 에세이집이라도 엮어주려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경사로 절반 정도를 내려오면 그런 지질한 생각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가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는 일은 기분이 참 좋거든요. 풍경 얘기도 빼놓을 수 없죠. 적당한 높이에서 저 멀리 뻗은 직선도로와 그 옆의 가로수들, 가까이 있는 낮은 강의동과 저 멀리 서있는 아파트 단지들을 바라보면 마치 저 한가운데에 위치한 도로의 끝이 소실점 같아 보이거든요. 그림이나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등장하는 그 소실점이요. 두 가지 다 저와는 거리가 먼 분야들이지만 제가 아는 한 소실점의 장점은 화면이 정돈되어 보인다는 거예요. 저는 단 한 번도 가지런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지만 세상이 가지런해 보이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제 이기적인 마음이겠죠.
신기한 일이죠. 도로를 달리고 달리다 보면 세상의 끝처럼 보이던 소실점에 도착해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이 끝이 아니고 여러 가지 갈림길이 나있고 직선으로 가면 강의동이 있고 오른편으로 가면 학교를 벗어날 수 있고 왼편으로 가면 제 책상이 있는 기숙사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죠. 어찌 되었건 끝인 것처럼 보이던 곳에 다시 돌아나갈 길이 있다는 건 마음이 놓이는 일입니다. 저는 공교롭게도 전동 킥보드를 통해 그걸 느꼈어요.
누군가 전동 킥보드를 타보니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좀 싱숭생숭하게 답할 거 같아요. 자전거보다 덜 아날로그적이고(공간을 살해하고!) 스쿠터보다는 느리며 실은 비싼 장난감일 뿐이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될 테니까요. 대신 계기판이 있는 삶은 참 매력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계기판 속 속도를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도요. 왜냐하면 계기판이 있는 세상은 균질하고 인과가 확실한 곳이거든요.
인간은 약간의 경사가 있어도 별 탈 없이 걸음을 재촉할 수 있지만 킥보드는 그렇지가 못해요. 단 1도의 경사라도 있다면 이내 느려져요. 그걸 몇 번을 경험하고서 깨달았어요. 내가 달리는 이곳이 오르막이구나 하구요. 우리 삶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사족인 거겠죠. 그래도 우리 삶에 계기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네요. 동일한 힘으로 밀어 나가도 속도가 느려진다면, 문득 힘이 부친다면 계기판을 보면 되니까요. 내가 달리고 있는 이곳이 오르막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우린 좀 덜 울게 될 텐데.
모든 일과 대상에는 다 장단점이 있죠. 킥보드를 타면 쓰고 싶은 얘기가 더 잘 떠오른다는 것도 장점일까요. 공간을 살해한다는 말 때문인지(이쯤 되면, “고맙다 상우야”) 마땅히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이 더 잘 떠올라요. 여기에 대해선 언젠가 다시 말할 기회가 있겠죠. 아무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킥보드를 타고 나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부디 이 글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바람이 제게 불어오지 않아도 제가 시원한 바람을 마중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만끽하고 싶거든요. 당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