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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Jun 06. 2018

협재의 낮, 부산의 밤

그림 <협재 앞바다>에 고마움을 표하며

1.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작가의 장편 소설 제목이다. 동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제목이다. 오해의 여지를 줄이자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제목이 아닌(물론, 전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소설 제목 중 가장 좋아하는 이름이다.   


저 소설 제목을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파도', '바다'와 같은 단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다의 수사학. 바다를 떠올릴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감정과 생각에 빠져든다. 


뜨거운 햇빛 아래 해수욕장의 시끌벅적함, 시원해진 밤바다의 모래사장과 두 개의 발자국, 지평선 아래 낮게 깔린, 드넓은 바다와 세찬 파도소리. 바다를 보면서 상념에 잠겼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고 그런 기억은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중에서도 바다를 향한 의인화는 늘 사람을 벅차게 만든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니. 쉬지 않고 몰아치는 파도가 실은 바다의 부지런함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은 사람의 무릎을 쉽게 넘어뜨린다. 또 이런 시도 있다. 


바다 맞은편에 눈 덮인 큰 산이 있고

오늘만큼 바닷빛은 말린 생선의 은비늘 같지만요

그리운 이 찾아 무슨 좋은 기별이라도 가듯이

산 쪽을 향해 바다가 제 몸 밀어 갈 적에는

당신이 웃는 그 모양 그대로

바다의 이는 유난히 희고 튼튼해요

(겨울바다, 문태준)


이 시의 화자는 겨울바다를 보다가 그리운 이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고 만다. 바다에는 이도, 웃는 모양도 없지만 그리운 사람을 빗대기에는 바다도 좁다. 눈 덮인 산을 향해 바다가 제 몸을 밀어가듯이 자신도 그리운 이를 향해서 몸을 밀어가고 싶지 않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시의 화자는 바다를 보며 웃었을까 울었을까. 이 시는 그리움 이후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지 않지만 화자에게 좋은 기별이 필요해 보인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자연스럽지만 당연하지 않아서 특별한 일


천안에는 바다가 있을까, 없을까.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질문이 제주 협재의 바다 풍경을 멋지게 그려낸 어느 그림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창작자의 의도와 창작 배경을 어느 정도 넘겨짚는 일이 필요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천안에는 바다가 없다. 천안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동북부 내륙에 있는 시이다. 동쪽으로 충청북도 청주시·진천군, 서쪽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남쪽으로 공주시·세종특별자치시와 인접하고,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시·안성시와 경계를 이룬다. 


행정의 문법을 따랐을 때, 천안에는 바다가 없다. 그러니 천안에 사는 누군가가 바다를 보러 제주도에 가는 일은 자연스럽다. 제주도에 다녀온 이가 제주도를 아름답게 그리는 일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연스럽다는 말과 당연하다는 말은 같지 않다. 제주도를 다녀온 이가 제주도를 아름답게 그리는 일은 자연스럽되 당연하지는 않다. 자연스럽지만 당연하지 않아서 특별한 일이다. 제주도를 아름답게 그리는 일은 그래서 특별하고 그 그림은 더욱 특별한 것이 된다.


나에게는 제주도를 다녀오고 나서 무언가를 남겨본 일이 없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떠난 것 이외에 제주도 바다를 본 기억이 없다. 하늘이 맑게 개였던 어느 겨울날, 제주도 앞바다를 바라보았을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길이 없다. 다만, 그림을 보며 어림짐작을 해볼 뿐이다. 그림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이다. 


바위와 자갈의 질감이 참 좋다. 멀리서 보이는 섬의 실루엣이 적나라하고 또 날카로워서 좋다. 하늘의 빛깔은 구름과 서로 조화로워서 좋고 바다의 빛깔은 섬과 섬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물결이 조화롭지 않아서 좋다. 유화인 탓일까. 사실적인 풍경을 반영하고 싶은 마음과 그 당시 떠올랐던 생각을 반영하고 싶은 마음이 겹겹이 칠해진 느낌이 든다. 


제주 협재의 바다를 그렸던 사람은 당시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을까. 아니면 혼란스러운 마음에 대해 고민했을까. 잘은 모르지만 나는 그 사람이 제주 바다를 보기 전보다 훨씬 더 깊어졌으리라 생각한다. 




3. 그 바다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바다를 보고 상념에 젖은 기억이 있다. 지난 늦여름, 부산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함께 탐방하는 견학 프로그램이었다. 대형 관광버스 한 대를 대절해서 가야 할 만큼 많은 인원이 함께 이동했지만 정작 내가 부산에 있던 1박 2일 동안 제대로 된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다. 


처음 보는 사람과 쉬이 가까워지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어찌 되었건 영화를 모두 본 다음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부산이었고 주말이었고 밤이었다. 나의 선택은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마침 숙소가 해운대 해수욕장 가까이에 있었다. 바닷바람이 강했지만 옷을 두껍게 입고 간 것이 도움이 되었다. 


밤바다는 잔잔한 듯싶다가도 한 번씩 모래사장으로 거칠게 몰려왔다. 그날 밤,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 허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들떠있던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낮, 나는 다른 날에 비해 조금 들떠있었다. 처음 참여한 영화제도, 오랜만에 온 부산도 모두 나를 설레게 했다. 낮에 본 영화도 나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우울하진 않았고 다만 혼자였던 탓에 조금씩 감상과 상념에 젖어들고 있었다. 


어떤 체계나 순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그 당시의 고민을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가령,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영화를 보는 일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바다가 밤새 뒤척인다고 해서 바다가 가볍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오래도록 바다를 응시하며 떠올린 생각이었다. 바다가 밤새 소리 내며 뒤척여도, 설사 그 철썩거림이 바다의 앓는 소리라고 해도, 누가 바다의 깊이가 얕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산의 밤바다가 나에게 주었던 어떤 특별함은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고민으로도 빛바래지 않을 스스로의 가치 같은 것이었다. 


고민은 할 수 있지만 고민하는 자신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기. 협재를 눈에 담아온 순간, 협재 바다 그림은 유일한 그 무엇이 된다. 나는 지금 그 유일한 협재 그림을 보고서 또 한 번 상념에 잠기려 한다. 이제는 협재에도, 그 어디에도 없을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며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한 사람의 내면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내 되뇌었다. 바다가 아닌 사람이 바다를 그릴 수는 없는 법이라고. 아름다운 바다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그 속에 바다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그리하여 우리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다. 내가 내린 답은 천안에도 바다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림을 통해 본 바다는 제주 협재의 바다도, 부산의 어느 밤바다도 아닌, 천안의 앞바다였다. 나는 그 그림이 깊고 맑아서, 섬세하고 때론 단호해서 너무 좋아졌고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싶어 졌다. 천안에도 앞바다가 있다고. 그리고 그 바다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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