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nhyuk kim Jun 30. 2018

삶을 도모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자기 확신이라는 표지판 세워두기

어제는 종강 기념으로 선생님과 저녁 식사를 가진 날이었습니다. 한 학기 수업의 소회를 공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드라마 비평가인 선생님은 평소 학생들에게 '감각의 회복'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도 콘텐츠를 제작하는 능력도 모두 '감각'에서 나온다는 주장이었지요. 저는 수업을 들을 당시 그 '감각'이라는 것이 다소 추상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업이 모두 끝난 지금에서야 '감각'이란 세상을 탐지하는 감수성 같은 게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입니다. 물론 그 감수성은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것이 여야겠지요. 

아무튼, 어제 선생님과의 식사는 즐거웠고 동시에 학생들이 자신의 고민을 토로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취업 문제가 가장 큰 화두였습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사회로 향하는 문 중 어느 문을 두드려야 할지 알지 못했고 두드린 문이 자신에게 열릴지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그건 저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소심하게도 제 얘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소주를 급하게 들이킨 건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술 한 잔을 기울여주시던 선생님은 그 순간, 이전까지와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감각의 회복'은 실은 '감각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구요. 자기 감각에, 제 식으로 말하자면 자기 감수성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그 어떤 창작물도 밀고 나갈 수 없으며 자기 식으로 완성할 수 없다고요. 

삶 또한 그러하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취한 탓이겠지요. 우리는 식사와 술로 덥혀진 몸을 시원한 바람에 식히며 얼마간 걸었고, 이내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숙사로 걸어 올라가는 동안 비로소 종강이라는 사실이 실감 났습니다. 

자신의 감수성에 대해 저는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을까요.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았습니다. 남에게 이것이 내가 읽은 책이라고, 그러니 당신께 이 책을 추천하겠노라고. 저는 어느 만큼의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었을까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이내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 졌습니다. 제 소심한 감수성이 제 삶을 밀어줄까요? 제 미련한 독서 습관은 사회로 가는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요? 제가 읽은 여러 줄의 시들로 제 삶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일까요? 곧바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제가 찾아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가 스스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세워두기로 했습니다. 창작물도 자신의 삶도, 자기 감수성에 대한 확신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밀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면서 삶의 안개를 헤쳐 나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하던 당신과 저에게 이 글을 보냅니다. 안개의 숲을 지나 도착한 그곳에서 서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2018.06.27)

작가의 이전글 계기판 있는 삶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