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습성이 자라 숲이 된 이야기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들 하지요. 그 얘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작문 스터디 마감을 어긴 적이 있었습니다. 매주 글을 한 편 써내는 스터디인데 그 주에 제출해야 했던 글을 써내지 못했습니다. 주제어는 '나만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 남들 다 아는 지식도 모르는 저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저는 저만이 아는 비밀에 무엇이 있을까 고심해보았습니다.
가끔 저에게 에세이집을 추천해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책 선물을 받기도 했구요. 굳이 그 이름을 적진 않겠지만 한 번쯤 책 제목이나 저자의 이름을 들어봤을, 베스트셀러들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같이 SNS을 통해 유명해진, 소위 ‘SNS 작가’들의 책도 있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자리에서, 혹은 추천받은 책이 생각나 서점 매대 앞에서 책을 펼치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세상에, 다들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어쩜 그렇게 다들 다정다감한지 놀라곤 합니다. 재기 넘치고 자기만의 주관과 고집이 있으며 자기 걸음대로 살아나가는 사람의 글은 읽는 사람의 마음도 따스하게 하지요.
책을 한 번이라도 선물해본 사람이라면 책 선물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알 겁니다. 선물 받을 사람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지요. 다양한 경우의 수도 따져봐야 하구요. 이 책이 그 사람의 책장에 꽂혀 있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받았던 선물들은 저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만이 해줄 수 있는 고마운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어쩔 줄 몰라하면서 받지요.
여기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인데, 비밀이라기보다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저는 정말, 그런 책을 잘 읽지 못합니다. 그런 책을 읽을 수가 없어요. 그런 책이라고 하면 앞서 말한 일상 에세이집 같은 책들 말입니다. 해당 책이 싫다거나 특정 글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부끄럽지만 그 자리에서 글을 읽기보단 노트북 앞으로 가서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처럼요.
네, 이게 세상에서 저만 아는 비밀입니다. 저는 읽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즐거운 사람이 되어버렸거든요. 제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요. 그래도 그간 받았던 마음들이 있으니. 담담하게 비밀을 얘기할 게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미안. 네가 추천해준 책들, 사실 절반도 읽지 못했어’ 라고요. 변명거리가 있다면 ‘당신이 선물해준 책 덕분에 뭐라도 열심히 쓰고 있었어’ 일까요.
이쯤 되니 제 못된 습성 말고는 비밀이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 비밀은 모두가 읽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비밀을 하나 심으면 대나무가 한 그루 자랐어요. 여기가 제 대나무숲입니다. 제 모자란 글들이 부끄러운 비밀을 숨기던 대나무숲이니 그 숲이 얼마나 무성했을지, 얼마나 어리숙했을지는 당신이 알지요. 민망하지만,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에 그늘이라도 드리울 수 있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