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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Jul 02. 2018

내 무성한 대나무숲을 열어 보이며

못된 습성이 자라 숲이 된 이야기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들 하지요그 얘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작문 스터디 마감을 어긴 적이 있었습니다매주 글을 한 편 써내는 스터디인데 그 주에 제출해야 했던 글을 써내지 못했습니다주제어는 '나만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 남들 다 아는 지식도 모르는 저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저는 저만이 아는 비밀에 무엇이 있을까 고심해보았습니다

가끔 저에게 에세이집을 추천해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때로는 책 선물을 받기도 했구요. 굳이 그 이름을 적진 않겠지만 한 번쯤 책 제목이나 저자의 이름을 들어봤을베스트셀러들이었습니다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같이 SNS을 통해 유명해진소위 ‘SNS 작가들의 책도 있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자리에서혹은 추천받은 책이 생각나 서점 매대 앞에서 책을 펼치곤 했습니다그럴 때면 세상에다들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어쩜 그렇게 다들 다정다감한지 놀라곤 합니다재기 넘치고 자기만의 주관과 고집이 있으며 자기 걸음대로 살아나가는 사람의 글은 읽는 사람의 마음도 따스하게 하지요

책을 한 번이라도 선물해본 사람이라면 책 선물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알 겁니다. 선물 받을 사람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지요다양한 경우의 수도 따져봐야 하구요. 이 책이 그 사람의 책장에 꽂혀 있을까 하면서 말입니다그러니 제가 받았던 선물들은 저를 잘 아는가까운 사람들만이 해줄 수 있는 고마운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늘 어쩔 줄 몰라하면서 받지요

여기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인데비밀이라기보다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저는 정말그런 책을 잘 읽지 못합니다그런 책을 읽을 수가 없어요그런 책이라고 하면 앞서 말한 일상 에세이집 같은 책들 말입니다해당 책이 싫다거나 특정 글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다만 그런 책을 읽고 있으면정말 부끄럽지만 그 자리에서 글을 읽기보단 노트북 앞으로 가서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뿐입니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처럼요

이게 세상에서 저만 아는 비밀입니다저는 읽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즐거운 사람이 되어버렸거든요제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요그래도 그간 받았던 마음들이 있으니담담하게 비밀을 얘기할 게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미안네가 추천해준 책들사실 절반도 읽지 못했어’ 라고요. 변명거리가 있다면 당신이 선물해준 책 덕분에 뭐라도 열심히 쓰고 있었어’ 일까요.  

이쯤 되니 제 못된 습성 말고는 비밀이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사실 제 비밀은 모두가 읽고 있었던 셈이니까요비밀을 하나 심으면 대나무가 한 그루 자랐어요여기가 제 대나무숲입니다제 모자란 글들이 부끄러운 비밀을 숨기던 대나무숲이니 그 숲이 얼마나 무성했을지얼마나 어리숙했을지는 당신이 알지요민망하지만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에 그늘이라도 드리울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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