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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Aug 15. 2018

사람이 미련과 상념으로 달리는 때가 있다고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든 생각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화창하기 이를 데 없다. 오늘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투명하게 맨살을 드러낸 건물들이며 자동차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그 풍경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일렬종대로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오늘은 모두가 쉬는 날이지만 내 방은 부산스럽기만 하다. 오래간만에 사진 정리를 하고 있고 또 짐 정리를 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학교 기숙사를 나가는 날이다.

  

혼자 자취를 하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다. 여러 방을 둘러보고 조건에도 마음에도 들지는 않지만 달리 선택지도 없는 방을 결정했다. 보증금을 내고 앞으로 나올 공과금과 관리비를 셈해보았다. '다시 기숙사로 들어가면 안 될까'라고 잠시 생각했다.

  

지난 일주일간 책은 모두 집으로 보내버리고 옷가지와 일상 용품들은 퇴근 후 조금씩 옮겼다. 먼지 쌓여있던 방에 사람의 흔적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먹고 자고 씻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런데도 '내 방'이라 할 만한 곳에서 잠을 청하는 일은 여전히 서툴러서 기숙사로 돌아와 잠을 잤다. 아직 뭔가 채워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딱 맞게 찾아온 공휴일에 세면도구며 이부자리며 마지막 짐을 캐리어에 담다가 창밖 풍경을 마주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나는 이곳을 떠나는 게 싫었던 거다. 울타리를 벗어나 화창하지만 분주한 도시로 나가는 게 두려웠던 거다. 사회로 나가는 일이 두려운 만큼, 딱 그만큼 기숙사를 나가기 싫었던 것이다

  

학교 안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학교에 남들보다 오래 남았고 각종 혜택을 찾아 누렸으니 학부생으로서는 천수를 누린 셈이다. 비닐하우스도 온실은 온실이니까. 취업 걱정에 가끔 머리 위로 비가 쏟아졌지만 나쁘지 않은 온실이었다. 

  

21살에 부모님의 차를 타고 기숙사에 들어온 지 7년째가 되었다. 군 복무 2년을 제외해도 꼬박 4년이다. 새삼스레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의기소침하고 자신감 없고 외로워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늘 인정에 목말라하고 강박적인 향상심을 지녀왔던 나인데. 그런 내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울어야 하는 일인지 웃어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과거를 떠올리며 상념에 젖을라치면 괜한 청승이 아닌가 하고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에겐 어쩔 도리가 없다는 체념 비슷한 깨달음이 뒤따라온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나는 앞을 멀리 내다보는 일보다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일을 더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회상에 잠길 때면 당시에 좋았던 일도 슬펐던 일도 결국엔 과거로 흘러가버린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걸, 언제나 더 나은 선택지는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능력과 마음이 뒷받침되는 선에서 말이다. 조금 더 분발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는가 하면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냈다면 좋았을 법한 날들도 있었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더 다정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언젠가 돌아볼 때 오늘도 그런 날이 되지 않을까. 오늘은 어떤 날로 기억될까.  

  

뜬금없지만 달리는 것에는 저마다의 동력이 있다. 자동차는 휘발유 혹은 가스로 달리고 자전거는 페달에 가해지는 인체의 힘으로 달린다. 내가 좋아하는 전동 킥보드는 전기로 달린다. 그렇담 사람은 무엇으로 달릴까. 나는 마라톤을 즐겨하는 하루키나 김연수가 아니어서 '매일의 습관' 같은 답은 못하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사람이 미련과 상념으로 달리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아야 앞으로 밀려나가는 순간과 시기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이 그런 때였으면 좋겠다. 내가 서 있는 풍경이 달라지는 요즘, 내가 그저 뒤를 돌아보고 있는 게 아니라 돌아볼 줄 아는 내 힘으로 나를 밀고 있다는 사실을 훗날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 짐을 마저 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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