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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Aug 22. 2018

글쓰기에 지쳐버린 당신에게

작은 발판이 모여 계단이 될 수 있다 믿으며

너무 많은 생각을 한 번에 말하려 하지 마. 천천히, 쉽게 말해도 괜찮아. 최근 누군가에게서 받은 글쓰기 조언이었다. 진심 어린 충고를 받는 일 자체가 귀하기도 하거니와 글에 대한 충고는 더 드물고 귀해서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도 그 말이 계속 떠오르는 걸 보면 지금의 나에게 참 적절한 말이었구나 싶다. 


한동안 머리가 어지러웠다. 스스로의 일상을 버티느라, 다른 누군가를 돌보느라, 또 내 맘과 싸우느라 많은 감정과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이 모든 걸 글로 담아내려다 보니 메모만 늘어날 뿐 완결된 일기 한 편을 완성하기 어려웠다. 


가만 생각해보면 텍스트라는 건 참 폭력적이다. 사람이 한순간에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글을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책상 한번 크게 내려치고 창문으로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저녁은 무얼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물며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동안은 오죽할까. 몇 분 몇십 분의 순간에 우리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간다. 그렇지만 문장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생각은 한 가지며 글 하나에 담길 수 있는 메시지나 정서도 한 가지다. 그 이상 넘어가면 글이 지저분해지거나 완결성을 잃게 된다. 


여기서 글쓰기의 괴로움이 시작된다. 오고 가는 생각과 감정 중에서 오직 하나만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마치 버스 전용 차로처럼 말이다. 집으로 가고 싶은 차는 많지만 버스 전용 차로를 통해 시원스레 내달릴 수 있는 건 허가받은 버스밖에 없듯이 가닿고 싶은 생각이 많아도 실제로 문장이 될 수 있는 생각은 선택받은 하나뿐이다. 


텍스트가 폭력적이라는 건 이런 의미에서다. 글을 쓰려면 우선 가지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선별의 과정이다. 마치 오디션처럼. 선별하는 입장에서 괴로울뿐더러 선택받지 못한 생각은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저 마다의 생각에도 마음이 있다면 지극히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소외의 마음이 받아야 하는 소외라니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폭력이다. 


앞서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고 적었다. 글쓰기는 언제나 힘들고 어렵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실력이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때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역시 내 능력이 부족해서’ 라거나 ‘나만 이렇게 힘들지’ 따위의 고개 숙이고 하는 지질한 생각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말을 더 많이 쏟아내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완결성 있는 글을 쓰는 어려움 자체에서 나를 구하지는 못했다. 


쌓아온 것들은 밟고 일어설 발판이 될 수 있다. 도움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말이다. 발판에 한쪽 발을 올려다 놓고 떠올려본다. 글이 안 써질 때 글로 쓰기에 가장 좋은 글감은 '글쓰기의 어려움'이었다는 것과 자괴감이 밀려올 때 맘먹기 가장 좋은 생각은 내 모든 생각이 글로 표현될 수는 없으며 모든 표현이 이해로 가닿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는 걸 말이다.      


우연히 내 모습을 거울로 마주하고서 웃음이 났다. 글이 너무 써지지 않아 시무룩한 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정도면 내 글이 될지 될 수 없을지 모를 내 생각들은 어떤 감정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으로 그 생각들의 표정을 떠올려보았고 그러자 나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로 속상해할 누군가의 표정이 겹쳐서 떠올랐다. 그래서 쓴 글이다. 작은 발판도 합치면 더 든든해질 수 있으리란 다 아는 사실도 함께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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