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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Jan 15. 2019

가학적인 욕망 위에는 아무것도 쌓을 수 없음을

스카이캐슬 위에서 우리는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김금희 작가의 장편 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으면서 슬펐던 부분이 있다. 주인공 상수가 몇 번의 시도 끝에 대입에 실패하고 나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자신처럼 아들도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아버지에게 아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말 안 되겠느냐’는 질문에 상수가 무슨 대사로 답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를 가로저었던가, 아니면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했던가. 어찌 됐건 정확한 건 상수는 ‘이제 더 이상은 할 수 없는, 정말 안 되겠는’ 상황에 직면했었다는 사실이다.


내 또래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한 번의 실패를 거치고 자발적으로 뒤주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구구절절 되짚는 건 불필요할 거 같다. 다만 지금도 기억나는 건 몸을 유폐시키는 것보다 마음을 유폐시키는 게 더 힘들다는 깨달음이다. 사람은 자고 싶고 쉬고 싶고 즐거운 일을 찾게 되고, 편안한 시간과 자리를 찾게 된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마음을 갇힌 시간표 안에 가두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그런 경험과 기억은 오래도록 몸과 마음에 남는다. 고문의 흔적처럼.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상처 받았던 거 같다. 내장 기관에 조금씩 생채기가 나듯이,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지금도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가끔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걸 보면 그때부터 확실히 마음이 힘을 잃은 거 같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가끔 후회한다. 내가 나를 좀 더 지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이다.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았어야 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한번 길들여진 강박에는 약이 없어서 지금도 가끔 나쁜 습관에 젖어들고 싶어 하는 걸 느낀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마다 재미있고 설레는 동시에 마음 한편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팽팽한 인물들 간의 갈등과 긴장감,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성공 추구의 틀 속에서 결국에는 끊어져 버릴 누군가의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를 보던 도중 곁에 있던 누군가에게 “이건 스카이캐슬이 아니라 사상누각이잖아”라고 웃으며 말한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꺼낸 말이지만 정말 말 그대로다. 가학적인 욕망이 버석거리는 모래 위에는 아무것도 쌓을 수가 없다. 그 위에는 한 사람분의 마음조차 쌓을 수가 없다.


마음을 쌓을 수 있는 곳은 다른 사람의 마음뿐이고 우리가 포갤 수 있는 건 서로의 손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 마음을 착취하지 말아야지. 과거의 내가 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들을 지금 해야지. 오늘은 내가 내 마음을 지켜야지, 하고 잿빛으로 물든 아침 하늘을 보면서 집을 나섰다.(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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