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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Oct 17. 2017

지금 그 답장을 쓰는 중입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왔습니다. 좋은 영화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지만 게으르게 엉덩이 붙이고 있다가 이제야 다녀왔네요. 상영관이 많이 줄어 평소보다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혹자는 감성에 과다하게 기댄 영화라고 하더군요. 저는 생각을 조금 달리 했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한국 영화들 사이에서 절제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위 말하는 '감성팔이'나 '국뽕' 영화를 지극히도 싫어하는 저에게 이 영화는 말해야 하는 순간에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아무리 담담하게 얘기하려 해도 극 중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이 없을 수 없고 인물의 눈에 눈물 한 방울 맺히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겁니다.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바로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일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그 슬픔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겠지만요.

공중에 달아놓은 줄 위에서 침착하게 한 걸음 한걸음 내딛는 영화입니다. 대중적이고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 속에서 이 말만은 넣고 싶다 생각한 한두 마디를 쓸 줄 아는 사람이 고수라고 합니다. 공동체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인물 간의 관계가 서로 겹쳐지며 공감할 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 덕에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요즘 공부하고 있는 내용들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원칙과 법은 분명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장치이지만 때로 누군가에게는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오히려 가해자는 당당하기까지 합니다. 자신이 가해자 혹은 동조자인 것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프란츠 파농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타인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방할 수 없다." 좋은 말입니다. 만약 억압이나 해방이라는 말이 부담스럽고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역지사지나 공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도 무방할 겁니다. 황금률이지요.

저는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제가 말을 걸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무척 외로울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누가 제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면 저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법입니다. 마침 영화의 제목이 <아이 캔 스피크>네요. 말을 하고 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네, 저는 편지를 받았고 지금 그 답장을 쓰는 중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도 그 편지를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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