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nhyuk kim Oct 18. 2017

따뜻한 공기밥 한 그릇이 될 수 있기를

일종의 기획서 혹은 출사표

누군가 왜 기자가 되려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작가가 되지 못해서 기자가 되려 한다고 답한 적이 있다. 삶에 뚜렷한 목표 하나 없는 내 희미함을 가리려다 그만 내 무능함만 두 배로 강조한 셈이었다. 그 말은 내뱉은 즉시 후회했지만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어서 한동안 속으로 앓아야 했다.


얼마 전에는 시가 어렵다고, 어떤 시를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때 호기롭게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했던가. 같은 달을 보더라도 시인마다 보는 방식이 다르고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서점에 흐드러지게 핀 시집들 속에서도 자신에게 꼭 맞는 표현이 있고 그럼 그 시집을 읽으면 된다고.

 

최승자는 달을 가리켜 '까마귀 살점처럼 붉은 달'(안)이라고 적었고 기형도는 '새앙쥐를 물어뜯는 더러운 달빛'(포도밭 묘지2)이라고 적었다. 시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표현은 <메밀꽃 필 무렵>의 '즘생 같은 달의 숨소리'라고, 왜 내가 저번에 소세키가 '보석을 모아놓은 듯한 달'(문)이라고 인용한 걸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들 사이에 선을 놓는 일 말이다. 아름다움이라도 다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며 감탄과 회한과 성애와 환락 사이에 떠있는 달을 나누고 추수하는 일. 그 사이에 가늘지만 아름다움을 믿는 만큼이나 단호한 선을 긋는 일. 그러나 이 선이 서로를 건너가지 못하게 막는 벽이 아니라 되려 하나의 아름다움에서 다른 아름다움으로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다리로 만드는 일.

 

식견은 짧고 재능은 없고 열정이라곤 가져본 적도 없는 나라 이런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보다 더 능력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글에 대한 글은, 책에 대한 책은 이미 책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달 한번씩은 책무덤을 책상 위에 쌓을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서 이 모진 세상에서의 동지애를 느끼지만 내가 그들에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좋아요 이외에는 없다. 책을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책을 멀어지게 만들고 이걸 읽어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을 보여주는 풍경 속에서 나는 배고파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 곳에서의 배고픔은 울음 소리를 낸다.


아직도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고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고 그 책을 읽고 싶은 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꽤 괜찮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책을 읽고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넘치는 것은 넘치는 대로 모자라는 것은 모라자는 대로 편견도 허장성세도 없이 당신에게 건네주고 싶다. 글로 배부를 수는 없어도 외롭지 않을 수는 있으므로. 내 글이 당신에게 따뜻한 공기밥 한 그릇이 될 수 있기를. 내 솔직한 감상을 지면에 소복히 담아 당신에게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그 답장을 쓰는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