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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Oct 15. 2017

우리는 함께 너른 들판을 걷고 있고 당신은

글쓰기에 대한 짧은 단상

요즘엔 스스로 자신 없는 글을 써야 했던 적이 왕왕 있었고 남에게도 글을 써내기를 채근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자주 주고받았다. 남의 얘기도 아니고 자기 생각을 쓰는 일인데 이리 낯설어서야 원.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글의 종류를 떠나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입장에선 고역임에 틀림없다. 머릿속에선 마치 영화 <덩케르크>에 나오는 전투기처럼 활공하던 생각이 손가락을 거치면 다리 셋 달린 기괴한 짐승이 바닥을 기고 있다. 그 답답함에 창가에서 한숨 쉬어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한 책장 차지하고 있는 게 글쓰기 관련 서적들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글쓰기 관련 부문으로 들어가도 긴다난다 하는 글쟁이들, 작가들, 편집자들의 책이 널려있다. 이제는 고전으로 불릴만한 이태준의 <문장 강화>부터 얼마 전 판매 1만부 고지를 달성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까지. 실로 다양한 책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직접 아뢰어 도움을 청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굳이 ‘내려다보며’ 라고 쓴 이유는 우리가 글쓰기에 있어 항상 어떤 답이나 모범답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 정체 모를 모범답안을 우리 위에 두기 때문이다. 물론, 더 쉬운 말 더 정확한 말은 분명 존재한다. 눈 밝은 독자인 우리는 어느 글이 더 입에 착 감기며 떨어지는 꿀처럼 눈으로 핥아도 달콤한지 직관적으로 안다. 맞춤법과 문법을 어길 줄 모르는 글은 글이 말을 쉽게 따라가는 시대에 더더욱 기대어 서도 좋을 만큼 든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모든 이점을 버리고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 모든 간결함과 유려함을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글을 편히 쓰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극한에 달한 미학이 아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남에게도 적어도 내 속내를 바로 서서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글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모든 훌륭한 글과 아름다운 문장이 실은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고 싶어 한 데서 나온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일에 두려워 할 필요도, 괴로워 할 필요도 없다고 믿는다. 내 앞에 백지가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백지 앞에 앉았으므로. 나와 당신은 어느 말이든 쓸 수 있고 또 어떤 말도 지울 수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도, 당신에게도 글을 써볼 것을 권했지만 결코 그 어떤 짜냄도 바라지 않았다. 향기는 짜내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꽃이 피어있는 너른 들판이지 향수가 아니다. 나는 당신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를 원한다. 글을 완성하더라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그 모든 과정이 아름다운 꽃임을 당신이 알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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