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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하는마케터 Mar 19. 2018

서촌, <커피 한 잔>

사직동 길목에서 마주한, 커피 한 잔

개강과 함께 봄이 성큼 다가왔다. 3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두꺼운 패딩보다는 얇은 옷들에 더 눈길이 가는 계절이 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몸이 저절로 밖을 향한다. 공강과 같은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목적지를 정해두고 근거리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딱히 목적지가 없어도 어디든 좋다. 그저 날씨가 좋아서 밖으로 향했다.

사직공원 따라 올라가는 길

경복궁 역에서 나와 사직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길목 사이에 오래된 간판 하나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얼룩진 간판은 글자도 흐릿하게 남아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서울의 길목에서 마주한 녹슨 간판을 바라보다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볕이 들어오는 입구

원목 특유의 삐걱거림과 함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책장에 쌓여있는 LP들이었다. 이곳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듯한 낡은 LP들. 순간적으로 디지털보다는 필름 카메라가 어울릴법한 <커피 한 잔>에 매료되었다.


책장에 쌓여 있는 낡은 LP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학생과 혼자 와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르고 있는 청년. 모두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내가 본 그들의 공통점은 커피 한 잔 보다는 이 공간의 가치를 알고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커피를 주문하는 청년과 커피를 준비하는 사장님

주문과 동시에 사장님은 묵묵히 커피를 내리신다. 마치 '각자의 세계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방해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듯한 무언의 의사표시처럼 느껴진다. 조용히 와서 찻잔에 커피를 내어준다. 커피가 그저 좋아서 즐기는 입장으로써 맛은, 괜찮았다. 자리에 앉아 낮은 시선으로 바라본 <커피 한 잔>은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알록달록한 천장의 조명들

오래된 간판과 걸맞게 세월의 흐름을 상징하는 다양한 물건들이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눈에 띄지 않은 곳에 있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구석에 걸려있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작은 것도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들여다보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발견한 천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광주리들은 사장님의 센스와 취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서울의 길목에서 마주한 <커피 한 잔>의 모습과 천장에서 조명 역할을 하고 있는 광주리는 맥락을 같이 한다.



운이 좋은 건지 원래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성향인지 모르지만, 그 날은 나른하고 조용했다. 차분한 공간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혹은 좋은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휴일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흔하게 볼 수 있는 세련된 느낌의 카페는 아니지만, 가정집 같은 색다른 공간을 원한다면 제격이다. 날씨가 풀린 요즘 같은 날이면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공간을 알게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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