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배달원

(2) 평일은 2500원 주말은 4000원

by 석촌호수 주민

할만한데?


소고기 무국을 저녁으로 <나의해방일지> 4화를 마무리하고 운동에 나서려는 찰라, 첫날 3건의 배달기억이 배달파트너 앱으로 이끌었다.


전등이 깜빡이는 통로에서 어둠이 길어지는 순간, 이틀차 배달원은 다시 집을 향했다.

운동은 장비빨 배달도 장비빨.

고객님의 안전한 음식을 위해 캠핑용 가방을 움켜매고 배달 '수락' 버튼을 눌렀다.


최적의 동선.


효율적인 에너지 소모를 위해서는 현재 위치와 식당, 고객의 거리가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한다.

지도를 보는 순간, 길을 안내하는 짙은 녹색 선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과감히 거절 버튼을 누른다.


실망스러운 단가.


기본요금 2500원. 평일은 주말과 달랐다.

어제의 4000원은 첫 배달의 미끼인가 주말 수당인가 하는 호기심은 금새 실망감으로 변했다.

운동할 '겸' 이라는 포장으로 나를 달래고 고독하게 떡볶이를 향해 달렸다.


늦으면 안된다는 생각. 기어를 최대한 낮춘 만큼 패달질은 허벅지를 자극했다.


20살 이후로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웃백, 고깃집, 일식집, 대형마트, 조선소.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웬만하면 했다.


서비스 정신보다 묵묵히 일하는 게 좋았는지

홀 보다는 주방, 주방을 보다가 불맨. 주변 아르바이트생들이 나갈때도 자리를 지켰다.


사장님께 잘 보여야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받은 만큼 일하는 게 당연했다.

파스타 면을 250g 씩 맞추는, 랍스터 500개를 까는, 숯을 끊임없이 불에 달구는

차라리 뇌를 비우는 게 나은 단순 노동이 많았고

아무말 없이 기계처럼 일했다.


그래서인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친해진 사람은 없다. 그 흔한 맥주한잔 하지 않고

그날을 위해 지원온 파견직원처럼 지냈다.


아르바이트생은 시간이 많았다. 6시간의 노동은 지방에서 올라온 촌놈이 서울에 적응하는 방식이었고 서울에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더 잘할 필요도, 다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치있었던 그때가 그리웠을까.


5년차 직장인이 배달을 시작한 건 20살의 보람찬 기억 때문이었을까.


떡볶이는 방이 먹자골목에 한켠에 늘어선 모텔촌에 무사히 도착했다.

X발.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쿠팡이츠는 도착지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건가.


밀려오는 수치스러움에 이번주는 배달을 쉬기로 했다.

(초인종이 없어 존재를 알릴 방법이 없었던 배달원은 문을 2번 두드리고 황급히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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