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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Sep 29. 2019

바쁘다는 건 헛소리

사실 오늘도 종일 빈둥댔다

정신없이 근무해온 탓에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머리맡에 둔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알고 지내던 경찰 형님이었다. 허겁지겁 앉아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어쩐 일이세요?” 형님은 아침 뉴스에서 내 이름을 보곤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형님과 같이 밥 먹은 때가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아 “에이, 뭐가 오랜만이에요?”라고 반문했다. 같이 했던 점심은 벌써 작년이 됐단다. 웅얼웅얼 말을 흐려 위기를 넘겼다. 여자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고, 몸은 괜찮냐는 물음을 건넸다. 둘이 만나 술을 한 잔 하기로 약속을 한 뒤에 통화를 맺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기자일을 한 지는 3년 차가 됐다. 파견을 합치면 부서는 3번을 옮겼다. 되게 바빴다. 분명 일이 없어 시간을 때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유는 대개 하루 이틀을 넘지 못했다. 1인분 몫은 해야 했기에 쩔쩔매면서 이리저리 지역을 쏘다녔다. 친구와 가족은 가끔 내게 전화를 했다. 통화를 하는 나는 습관처럼 ‘요즘 바빠서’라는 말로 운을 뗐다. 만나자는 말을 했지만 요일을 못 박지는 않았다. 어렵게 날을 잡아도 약속을 무르는 경우가 잦았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만병통치약’ 삼아왔다. 그 탓에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러고선 편한 사람들만 만나왔다. 같은 일을 해서 고충을 아는 사람들, 그래서 내 고민에 공감해줄 사람들을 찾았다. 자연스레 만나는 사람들의 폭은 넓지 못했다. 어쩌다 가끔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얘기를 이어가야 할지 목이 턱 막혔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내켜하지 않았다.


3일 전쯤,  조언을 구하려는 후배가 연락이 온 적이 있다. 가리지 말고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답했다. 그 후배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진지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답한 스스로는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에게 내 얘기를 하는 건 왠지 모르게 민망하고 어렵다. 교집합이 없는 사람과 업무 외의 일로 대화하는 건 여전히 고역이다.


사람의 기억에 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몰골을 하고 경찰서를 돌아다니던 날 챙겨주고, 안 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날 기억해준 형님은 고마운 사람이다. 바쁘다는 핑계를 댔던 날 찾아준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형님과는 약속을 잡으려 한다. 1년에 두 번은 봐야 하지 않겠냐던 친구에도 먼저 연락을 할 참이다. 제맘대로 관계를 맺어온 날 기억해준 게 고맙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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