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풍수로 조선 후기 좁혀 보기

왕이 왕이 아니던 이유가 오직 명당 때문이었다니

by 차돌


· 브런치 무비패스로 감상했습니다.

· 스포는 일절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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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주인공의 꿈이거나 상상일 것 같은데?'


<명당>을 보는 동안 대략 세 번 쯤 품었던 생각이다. 단 한 번도 실제 스토리가 그렇게 흐르지는 않았으나 내가 그랬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전개가 워낙 빠르고 캐릭터의 변덕(?), 상황의 변화가 그만큼 급작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 없는 왕이라도 그렇지 세도가의 집으로 호기롭게 들어섰던 게 무색할 정도로 맥없는 모습을 보이질 않나, 애초의 계획이 그랬는지 갈수록 독기가 올랐는지 흥선은 서서히 눈을 희번덕거리지를 않나.


'사극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20부작 쯤은 무난히 풀어냈겠다.'

그러려고 작정한 영화의 전개임을 감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 영화를 보고난 내 기분은 딱 이랬다. 풍수지리, 명당을 소재로 모든 걸 얘기하려다 보니 인물의 입체감과 스토리 변주의 폭이 굉장히 좁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아무래도 영화 <명당> 의 터전은 썩 명당이 아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감히 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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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랑>을 최대한 돌려서 비판하고 옹호까지 했음에도(거의 내가 유일했는데!) 기어이 몇몇 악플을 경험했던 바, 이를 통해 나는 영화평은 역시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후회라도 덜 남는단 나름의 교훈을 새겼더랬다. 결단코 <명당>을 <인랑>과 동일선상에서 본다는 얘기는 아니다! 처음부터 다소 적나라한 주관평을 썼다 보니 언급할 뿐이지, 배우 조승우와 유재명 콤비, 백윤식, 지성, 김성균이 열연한 시대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명당>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굳이 감추지 않은 이유는 역시 <관상>, <광해>의 신선했던 충격과 여운이 드리워놓은 그늘이 사극 영화들에 여전하기 때문이리라. 아예 다른 지점을 내세우거나 차별화를 시도했다면 몰라도, <궁합>의 실패를 은근히 감춘 채 <사도>까지 들먹이며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 영화 홍보에 비해 막상 스크린은 관객들을 그 높이까지 끌어올릴 힘이 부족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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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부터 빠르게 진행된다.


이유불문하고 번쩍 등장한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 역)은 감히 간신들 앞에서 왕에게 충언을 하다가 세도가 장동 김씨의 눈밖에 나서 참변을 겪는다. 그로부터 13년 후,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위세를 떨치는 김좌근(백윤식 역)과 그의 아들 김병기(김성균 역)는 누가 봐도 악의 세력이다. 그에 맞서리라 짐작할 수밖에 없는 박재상은 여전히 풍수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며 단짝인 용식(유재명 역)과 케미를 뽐내면서 재등장한다. 이러한 전형적인 선악 구도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후기 헌종(이원근 역)의 재위 시기인데, 악의 무리가 당대 제일의 세도 가문 장동 김씨인데 반해 주인공은 탁월한 능력 외에 아무것도 없는 점 또한 매우 전형적인 클리셰다. 즉, 이 영화는 시대극의 탄탄하고 안정적인 구도에 기대어 배우들의 열연과 시나리오의 흡인력을 통해 흥행공식을 완성시키고자 한 작품인 것이다.


이에 관객들이 극의 본격적인 전개와 흥미를 기대할 무렵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흥선(지성 역)이다. 영화에서 그는 '쇄국정책'으로 대표되는 대원군 시절의 완고한 이미지와는 달리 젊고 호기로운 눈빛을 지닌 청년이다. 세도 가문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파락호 흉내를 내다가 모욕을 당하는 장면은 야사의 재구성과 극의 흐름을 위해 불가피 했을 터이다. 이를 보는 관객으로서도 흥선의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상황에 몰입하기 쉽지만은 않다는 점 또한 불가피한 요소이다 보니, 제작자와 관객이 퉁 친 셈으로 하는 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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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이 지나치게 기울어 있던 선과 악의 세력 균형에 무게추 역할을 해 나가며 스토리는 추동력을 얻는다.


그런데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영화 <명당>은 주연들의 경험을 빠르게 등장시킴으로써 이들의 욕망과 의지가 스토리를 이끌어 갈 것을 차고 넘치게 깔아놓았다. 가족을 잃는 비극을 겪은 박재상의 한과 왕손임에도 큰 소리 한 번 못내보고 비루하게 살아가는 흥선의 한이 다가 아니다. 기방의 으뜸가는 여인으로 등장해 의문에 싸여있던 초선(문채원 역)이 남몰래 품고 있던 한까지 드러나며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의 사연이 해소되는 과정을 기대하게끔 만들 수밖에 없다.


이 지점이다.


영화는 이후의 숨가쁜 전개를 통해 적어도 관객에게 지루할 틈은 주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 풍수, 명당이라는 소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이 과정에서 명당은 곧 힘과 세력이요, 터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인물들의 혈투는 시대의 소용돌이 그 자체다. 소소한 극의 재미와 인물 배치로 켜켜이 쌓아놓은 사연들이 한 순간에 주변으로 휙 내팽개쳐지는 이유다.


기실 이 모든 것은 실제 역사에서 차용된 이야기다. 흥선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가 대명당 자리인 충남 가야사에 있다는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그걸 알았던 내가 그러했듯, 많은 관객들이 다소 허탈한 기분에 휩싸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약간의 관심만으로도 이를 미리 알고 본다면 오히려 <명당>의 이야기와 연출에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


그럼에도 추석 명절에 이미 본 영화를 또 보기보다는 <안시성>처럼 새로운 작품을 볼 듯한 예감에 나는 미리 다른 이들의 평을 검색한다. (미안하지만 '물괴'는 진작에 마음에서 지웠습니다. 원래 괴수물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서도...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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